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수사팀 구성 54일 만에 이 사업 민관(民官) 핵심 주체 대다수를 뇌물 유착에 의한 특혜로 공공영역에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지만, 인허가권자인 성남시가 공모했는지 여부는 공소장에 이번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대장동 의혹의 핵심 축이었던 배임 의혹 수사는 윗선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채 사실상 마무리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떻게 일사천리로 민관 유착이 가능했느냐'는 물음표가 검찰 앞에 여전한 가운데 수사팀은 대장동 사업자들의 정치권·법조계 불법 로비 의혹으로 수사의 초점을 옮길 전망이다.
김만배·남욱 '배임 구속' 후…윗선 수사 관측 빗나가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22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동업자인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천화동인 5호 소유주인 정영학 회계사는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불구속 상태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이로써 앞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도개공) 기획본부장을 포함해 민관 핵심 사업주체들의 유착 의혹 수사는 일단락 됐다.
검찰은 민간 사업자인 김씨와 남 변호사, 정 회계사가 도개공 인사들인 유 전 본부장, 정민용 전 전략사업실장과 결탁해 2015년 대장동 개발 사업자 공모·선정·협약 등 전반에서 맞춤형 부당 특혜를 제공받았다고 판단했다. 사업 방식, 공모지침조차 이들 민간 사업자들이 제안한 내용 그대로 확정됐으며, 그 결과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7호는 최소 651억원의 배당이익을 더 챙겨 도개공에 그만큼에 손해를 끼쳤다는 게 배임 의혹 관련 중간수사 결과다. 수사팀은 민간 사업자들이 챙긴 1176억원의 시행이익도 특혜에 따른 배임액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유착 과정에 사업 인허가권을 쥔 '이재명 성남시장 체제'도 일조했는지 여부에 대한 수사 내용은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4일 김씨와 남 변호사가 배임 혐의로 구속된 걸 고리삼아 수사력이 윗선의 공모 여부를 따지는 데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검찰은 사업주체들의 혐의 다지기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에서도 "구속영장 청구 시점과 비교했을 때 추가된 내용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구속 기간 동안 내실 있는 조사가 진행됐는지 물음표가 따라붙는 대목이다.
檢 "수사 계속"이라지만…"사실상 끝난 것" 시각도
수사팀은 '윗선 배임 의혹 수사'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이지만, 법조계에선 "사실상 관련 수사는 끝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재판에 넘겨져 피고인 신분이 되면 기소된 혐의 관련 검찰의 당사자 추가조사는 어려워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배임 수사의 연결고리가 사실상 끊겼다는 것이다. 예컨대 검찰이 김씨를 불러 배임 의혹 관련 추가 진술을 받게 되면 증거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앞으로 성남시 관여 여부에 대한 수사를 하다가 민간 핵심 사업자들과의 대질 신문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그게 어려워진 것"이라며 "이런 점을 수사팀이 염두에 뒀다면 기소 전 구속기간 동안 배임 공범 의혹을 받는 이들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조사했어야 한다. 그 조사를 위해 구속했던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검찰은 '늑장 조치' 비판을 받았던 성남시청 압수수색 이후 여태까지 팀장 이상 간부급 시 관계자들에 대해선 소환조사조차 본격화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조차 "배임 관련 공소유지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소된 이들은 사업지침을 청탁해 관철시킨 게 아니라, 성남시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행정 지침에 맞춰 정당하게 사업을 진행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지방검찰청의 검사는 "(쟁점인) 지침의 주체가 누구인지, 인허가 과정에 특혜가 있었는지 여부는 사건의 배경과도 같은데, 이 부분이 아직까지 조사되지 않았다면 추가 조사는 물론, 공소유지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수사팀이 배임 주범으로 판단한 정민용 전 실장이 이번 기소자 명단에서 빠졌다는 점을 두고 윗선 수사의 연결고리가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다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법조계 로비 의혹도 빠졌지만…수사는 그나마 속도
검찰은 민관 사업자들의 공소장에 이들끼리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는 적시했지만, 정치권·법조계에 대한 로비 의혹 수사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추가 규명 과제로 남긴 건데, 해당 수사는 표면상 '배임 윗선' 수사보다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팀은 대장동 사업자 컨소시엄 구성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화천대유로부터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고 지목된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지난 17일 실시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곽 전 의원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박영수 전 특검의 인척이자 화천대유의 아파트 분양대행 사업을 독점한 업체 대표 이모씨와 대장동 민간 사업자들 간 수상한 금전흐름도 계속 추적 중이다. 검찰은 이씨가 2014년~2015년 사이 사업권 수주 대가로 남 변호사 측에 40여억원을 전달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다만 화천대유에 도움을 주고 거액을 받거나, 받았다는 이른바 '50억 약속 클럽'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거론된 의혹 당사자들 소환조사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