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낮 1시쯤 부산 사하구 한 사우나 앞.
한 남성에게 다가가던 A(19)양이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한다"고 말했지만, A양은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당시 부산 사하경찰서 형사들은 "스마트폰이 해킹을 당했으며, 돈 전달을 요구해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고 잠복 중이었다.
신고자로부터 현금을 전달받기 위해 약속장소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A양이었고, 이에 경찰은 A양을 체포한 것이다.
하지만 A양은 이 같은 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은 그저 회사에서 시킨 일을 하러 왔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경찰이 전한 A양 진술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초 인터넷 구직사이트 앱을 통해 경남 창원의 한 제조업체에 입사지원서를 내 채용됐다.
회사의 채용 통보와 업무 지시는 모두 텔레그램 메시지로 이뤄졌다. 자신을 회사 관계자라고 밝힌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직원들이 비대면 근무를 하고 있으며, A씨도 업무 지시가 있으면 바로 현장으로 가 업무를 보면 된다"고 안내했고, A양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이 회사 관계자는 "부산 사하구 한 사우나 앞으로 가 거래대금을 받아 오라"고 지시했다. A양은 그렇게 돈을 받으러 왔다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A양이 검거되자 회사 관계자가 이용하던 텔레그램 계정은 곧바로 사라졌다. A양이 지원한 제조업체는 실체가 없었고, 구직사이트에 올라온 업체 주소는 허허벌판이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는 상태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간단한 일에 많은 수입이 주어지니 나중엔 보이스피싱 범죄인 걸 알고도 계속하다 경찰에 붙잡힌다.
이렇게 검거된 수금책들이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줄을 잇자, 기존 방법으로 수금책 모집이 어려워진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최근에는 A양 사례처럼 일반 기업인 척 구직자를 모아 범행에 가담시키는 수법을 쓰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했다가 처벌받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직자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 사하경찰서 관계자는 "A양은 아직 조사를 받고 있지만, 돈을 전달하기 전 붙잡아 다행히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며 "A양과 비슷한 연령대인 또 다른 피의자는 이상하다고 느끼고도 계속 수금책을 해 수억 원대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직자는 입사 지원을 하기 전 회사 주소가 실제 있는 곳인지 확인하고, 회사로 가 면접을 보는 등 대면하는 형태가 아닌 비대면으로 바로 업무를 시작하라는 연락이 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며 "특히 업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급여를 준다는 생각이 들면 반드시 재차 확인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