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이날 김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처음 소환해 조사했다. 민관(民官) 합동 개발 방식으로 진행됐던 대장동 사업의 민간 사업권자인 김씨는 사업 특혜의 대가로 공공기관 쪽 실무 지휘자인 유동규(구속)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오전 9시50분쯤 검찰에 출석한 김씨는 12일 0시 넘어서까지 14시간 가량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김만배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는 나…'그분 언급'은 갈등 차단용"
김씨에겐 사업 초기 유 전 본부장에게 사업 특혜를 대가로 수익금 배당을 약속했으며, 이에 따른 배당 합의액수가 700억원에 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뇌물성 배당금을 고리로 민관이 유착돼 대장동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700억원 약정 의혹'을 뒷받침하는 내용은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5호의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파일 등 자료와,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팀장이 검찰에 낸 자술서에도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김씨와 유 전 본부장은 사업 특혜·뇌물 사전 약정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제출 자료 분석과 계좌 추적을 이어온 검찰은 배당 합의액의 일부인 5억원이 올해초 김씨로부터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액수는 유 전 본부장이 뇌물‧배임 혐의로 검찰에 구속될 당시 영장에도 적시됐다. 4억원은 수표로 지급된 것으로 보고 있는 수사팀은 최근 천화동인 4호 소유주인 남욱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김씨로부터 나온 수표 4억원이 사무실 운영자금으로 쓰였다는 내용의 회계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뇌물이 남 변호사를 거쳐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된 것은 아닌지 캐물었지만, 김씨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는 조사 후 기자들과 만나 남 변호사에게 빌린 돈을 갚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700억원 약정 의혹과 맞물려 불거진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논란에도 김씨는 문제될 게 없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표면상 화천대유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천화동인 1호는 1억400여만원의 투자금으로 최근 3년 동안 1200억원대 배당금을 챙겼다. '정영학 녹취록'과 '정민용 자술서'를 중심으로 천화동인 1호의 상당 지분이 유 전 본부장 또는 그 윗선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김씨는 검찰에 출석하면서 "실소유주는 바로 나"라며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들은 수익금 배분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특정인이 의도적으로 녹음하고 편집한 녹취록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조사 후에도 이 입장을 유지하는 한편, '천화동인 1호 배당금 절반이 그분의 것'이라고 자신이 언급한 내용이 녹취록에 담긴 데 대해선 "제 입장에서는 더 이상 구(舊) 사업자 갈등이 번지지 못하게 하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취재진에 밝혔다. '그분 언급'은 인정하지만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등 동업자들과 비용 부담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씨는 "(녹취 주체인 정 회계사와) 한 번도 진실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그는 불리한 증거인 녹취록을 겨냥해 이해관계와 맞물려 편집된 자료일 뿐이라며 그 신빙성을 평가절하하는 주장을 핵심 방어 논리로 내세웠다. 다만 검찰 조사 직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대리인을 통해 '그분 언급' 자체를 부인했다는 점에서 입장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화천대유 수백억원 어디로…金 "이재명과 관계없다" 강조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정관계, 법조계 유력인사들에 대한 전방위 로비 의혹도 같은 논리를 앞세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씨는 자신이 '성남시 의장에게 30억원, 성남시 의원에게 20억원이 전달됐고, 실탄은 350억원'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내용이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것으로 보도되자 "녹취록에 그런 언급이 있더라도 그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김씨는 "인허가를 담당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과반 주주인데 무슨 로비가 필요하겠느냐"며 "정영학이 녹취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일부러 허위사실을 포함하기도 했다"고도 덧붙였다.검찰 수사팀은 김씨가 화천대유에서 장기대여금 명목으로 인출한 473억원이 로비에 사용된 건 아닌지도 추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100억원은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인척 관계인 분양대행업체 이모 대표를 거쳐 토목건설업체 나모 대표에게 전달된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파악됐다. 김씨는 취재진에 "불법적인 자금이 거래된 적은 없다"며 "검찰이 계좌추적 등을 통해 자금 입출구를 철저히 수사한다면 현재 불거진 의혹들은 많은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법조 기자 출신인 김씨를 상대로 유력 법조인들의 화천대유 고문·자문 활동 실체와 그 대가,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고액 퇴직금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도 계속 추궁해 나갈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서 무죄 취지 의견을 앞세웠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 고문 활동을 한 건 일종의 거래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 김씨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세간의 호사가들이 추측하고 짜깁기하는 생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며 "얼토당토않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화천대유 자금이 이 지사의 변호사비로 사용된 것 아니냐는 물음표에 대해서도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이고 억측"이라고 했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은 곽 전 의원의 아들처럼 거액 지급이 예정된 '50억 약속 클럽'이 존재한다는 논란도 김씨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장동 사업 내부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수사팀은 김씨에 대한 추가 소환 여부를 검토한 뒤 조만간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