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17일 검찰 등 수사기관이 형사사건을 언론에 공개할 때 준수해야 할 규정을 보다 엄격하게 손질한 뒤 그 내용을 발표했다. "공개 대상을 구체화하고 공보 내용을 확장했다"는 게 개정 규정에 대한 법무부의 자평이지만 실질적으로 공개 범위는 제한됐고 공개를 위한 요건은 더욱 더 까다로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수사 정보 유출이 의심될 경우 담당 검사 또는 수사관에 대해 진상조사를 거쳐 내사가 가능하도록 '형사 절차'를 명문화한 규정도 개정 규정에 포함됐다.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비롯해 정권 관련 수사에 대한 보도가 잇따른 것이 배경이 돼 규정 개정으로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권력 수사 정보공개를 차단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상 구체화·공보 확장'이라지만…어렵고 좁아진 형사사건 공개
법무부는 개정 규정의 골자가 △기소 전 공개범위 확대 및 엄격한 기준 제시 △예외적 공개요건 명확화·구체화 △수사정보 유출 관련 인권보호관 진상조사 근거 신설 △반론권 보장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심의 시 고려사항 추가 등 다섯 가지라고 설명했다.법무부 관계자는 개정 규정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 및 규정의 규범력을 제고하고, 수사 동력 확보를 위한 '여론몰이형 수사정보 유출'을 방지 등을 위해 개정된 규정"이라고 자평했다. 수사 공개 범위를 확대했고 규정은 구체화했다는 취지의 설명이지만 규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오히려 공개가 가능한 사건의 범위는 제한됐고 갖춰야 할 요건들은 대폭 늘었다.
일례로 기존 규정에는 공소제기 전에 예외적으로 사건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은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의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규정 9조 2항) △범인의 검거 또는 중요한 증거 발견을 위하여 정보 제공 등 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9조 4항)로 적시됐다.
하지만 이번 개정 규정에서는 9조 2항의 맨 앞에 '범죄'라는 표현을 '전기통신금융사기, 디지털성범죄, 감염병 관리에 관한 범죄'라고 구체화 해 공개 대상 범위를 제한했다. 9조 4항의 경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의 의결을 거친 경우(다만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조건을 추가로 달았다.
특히 권력사건 등 '중요사건'의 경우 제한을 더욱 심화했다. 기존에는 '수사 착수된 중요사건이고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 심의위의 의결을 거친 경우'면 공개 대상이었지만 개정 규정에서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에 관한 규정', '검찰보고사무규칙' 등 특정 조항에 적시된 범죄로 중요사건의 범위를 전보다 제한했다.
내란·외환·선거·테러·대형참사·연쇄살인·공무원 및 국회의원 범죄 등이 그 대상인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객관적 정황이 있는 경우에만 공개'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추가됐다. 공개 여부를 결정할 심의위 개최 시 고려할 기준들은 더욱 상세해졌고, 공개되는 모든 정보는 범위는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에 한정한다'는 조항도 함께 마련됐다.
"권력수사 정보 공개 차단"…법조·언론계 일제히 비판
"기소 전 공개범위 확대"라는 법무부의 설명과 달리 사실상 공보가 가능한 수사 사건과 정보의 범위는 한정됐고 공개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수많은 제한 장치를 달아놓은 셈이다. 개정 규정 발표 직후 법조계와 언론계에서는 "정권에 제기된 의혹 관련 정보가 차단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가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의 비판이 일제히 나왔다.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 보호라던가 수사 기밀을 적절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방안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들은 일방적으로 지금 현 정부와 관련한 범죄 혐의 관련 '수사 정보를 알리지 말라'는 의도성이 다분한 규정들"이라며 "권력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첫 사명인데 이 역할 자체를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사 정보 유출이 의심될 경우 각 지방검찰청의 인권보호관이 의무적으로 진상조사를 하고, 경우에 따라 내사 혹은 감찰 절차를 밟게 한 조항이 개정 규정에 신설된 점도 논란의 대목이다.
'의도적일 경우'라거나 '본질적인 수사정보일 경우'라는 등 단서는 달려 있지만, 사실상 언론보도를 근거로 권력수사 담당자에 대한 형사 처분 가능성까지 암시한 '협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의견도 검찰 내부에서 나온다.
한 간부급 검사는 "현 상황에 수사팀이 수사 정보를 흘린다는 건 어려운 상황이고 특히 민감한 정권 관련 사건은 더욱 그런 상황이다"며 "관련 보도가 다양한 경로로 나올 때마다 감찰이니 하는 압박이 들어오는데 이 규정도 그런 차원에서 수사 검사에 대한 위협, 협박용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권력 수사의 내용이 원천 차단될 경우 수사 무마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또 다른 고위 간부급 검사는 "수사 상황을 나쁘게 흘리는 것을 검증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해결해야지 이를 의도적으로 틀어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상관이 규정을 압박 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심지어 수사를 덮을 수도 있어 기본적인 수사 상황은 투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정 작업 근거 된 '권력 수사' 보도…'속내 의심' 시각도
이러한 개정 작업이 이뤄진 배경이 권력 수사 관련 언론보도의 '양'이었다는 점도 비판 지점으로 언급된다. 겉으로는 '사건관계인 인권보호'를 내세웠지만, 권력수사 정보 공개를 막아 수사 동력을 차단하고 의혹 보도를 막는 것이 개정 작업의 속내가 아니냐는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14일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사건 합동 감찰 결과와 함께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개정 방침을 밝히며 김학의 출금 사건과 옵티머스·라임 의혹, 그리고 월성 원전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량을 언급한 바 있다. 모두 현 정부 인사가 연루됐거나, 연루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이다.
당시 법무부는 김학의 출금 보도 2937건, 라임 보도 1854건 월성원전 보도 1653건, 옵티머스 보도 886건이 "규정을 위반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규정을 위반한 것인지는 불확실한 가운데, 박범계 장관은 이와 관련 "피의사실유출로 인한 기사가 아닌가 하는 강력한 추정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