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이끈 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1868~1943)의 유해가 78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홍범도 장군 유해를 실은 특별수송기(KC-330)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공항에서 이륙해 15일 저녁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서훈 국가안보실장, 유영민 비서실장, 서욱 국방부장관, 등이 봉환식에 참석해 홍 장군의 유해를 맞았다. 대통령 특사단이었던 황기철 보훈처장을 비롯해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배우 조진웅도 봉환식에 참석했다.
카자흐스탄에서 반나절에 걸쳐 날아온 홍 장군의 유해는 수송기에서 '로더'를 통해 서서히 내려졌고, 장병들에 의해 한발 한발 옮겨졌다.
구슬픈 첼로 연주로 성악병이 제창하는 애국가가 장내에 흘렀다. 멜로디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노래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국가처럼 불리던 노래라 특별히 선곡됐다.
홍 장군의 유해가 최고 예우 속에 드디어 고국의 땅을 밟자 감정이 복받친듯, 문 대통령의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이 카메라에 클로즈업 되기도 했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문 대통령이 2019년 4월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직접 요청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으며, 코로나19 상황으로 1년여간 미뤄지다 이번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성사됐다.
전날 현지에 도착한 대통령 특별사절단과 유해봉환 실무지원단은 크즐오르다에 있는 묘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수습해 소관에 담아 카자흐스탄 국기로 관포 후 현지 병원에 임시 안치했다.
시신은 포르말린 처리 후 대관으로 옮겨져 태극기로 관포돼 특별수송기에 실렸다. 이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의 시내 상공을 세번 선회한 뒤 고국으로 향했다. 홍 장군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은 사망 연도 기준으로 78년 만이며, 그가 이끌었던 봉오동·청산리 전투(1920년)를 기준으로는 101년 만이다.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일제 치하에서 의병투쟁에 몸을 던졌으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며 간도와 극동 러시아에서 일본군을 토벌했다.
2m 가까운 큰 키에 용맹한 외모였던 그는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였고, 민중에게는 '백두산 호랑이' '축지법을 구사하는 홍범도 장군'으로 불릴 만큼 추앙받았다.
홍 장군은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최진동 장군과 함께 독립군을 이끌어 봉오동 골짜기에서 전면전을 벌여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 명에게 상처를 입혀 대승을 거뒀다. 같은 해 10월 보복전에 나선 일본군 대부대를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합세해 무찌른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기도 하다. 두 전투는 무장독립전쟁사의 기념비적 전투로 꼽힌다.
이후 700여명의 독립군 통합부대를 이끌고 1921년 1월 우수리강을 건너 러시아령으로 들어갔으며, 항일무장투쟁을 꿈꾸며 이만과 연해주 등지에 머물렀다.
하지만 홍 장군은 1937년 옛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해 현지에서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기도 했다.
보훈처는 홍범도 장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16~17일 이틀간 온라인·오프라인으로 국민추모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보훈처 누리집(www.mpva.go.kr)에서 온라인 헌화, 분향이 가능하고 추모의 글을 남길 수 있다. 이 기간에 대전현충원 현충문 앞에 설치된 국민분향소에서 직접 참배 및 승차 참배(드라이브 스루)가 선착순으로 이뤄진다.
유해는 국민추모제가 끝난 뒤인 오는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