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신탁통치 결정이 국내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나온 언론의 오보는 남한 사회를 극심한 이념 갈등의 장으로 만드는 도화선이 됐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 외부에 공개되기 직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12월 27일 자 1면 머리기사로 모스크바 회의내용을 전한다.
모스크바 회의에서 소련은 조선의 신탁통치를, 미국은 조선의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반탁(신탁통치 반대) 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퍼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모스크바 3상회의 합의 구체적인 내용, 즉 △독립국가 재건, 국가발전 조건 생성, 조속한 일제 청산을 위한 임시민주정부수립, △임시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미소공동위원회설치 △최대 5년간의 신탁통치 등이 정확히 알려지면서 일부 세력은 신탁통치에 찬성(찬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전승국들의 합의로 조선 독립의 명확한 로드맵이 세워졌다는 이유 등에서다.
그러나 조선의 자주독립 여망에 찬물을 끼얹은 1보의 후폭풍은 신탁통치 결정에 대한 국내 건설적 논의를 마비시켰다.
찬탁론자들은 반역국 소련과 가까운 좌익, 공산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렇게 12월 27일 보도는 한반도의 정치적 갈등의 골을 심화시킨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는 명백한 오보였다.
신탁통치를 처음 기획한 것도 미국이었고, 모스크바 3상회의라는 국제적 논의를 거쳐 그 구상을 구현시킨 것도 미국이었다.
이는 모스크바 회의 이후 나온 뉴욕타임스 보도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기밀 해제된 미국정부 문서에 따르면 1943년 3월 27일 루즈벨트 대통령도 영국 외교관들을 불러 국제정세를 논의하면서 한국의 신탁통치 필요성을 언급했었다.
당시 모스크바 3상회의는 의제는 유럽 여러 나라들의 평화 조약, 일본 극동 위원회 설치, 원자력 통제위원회 설립 등이 주요 의제였고, 한국 신탁통치 문제는 비중이 떨어지는 주제였다.
따라서 외신에서도 한국 신탁통치 논의 과정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다만 12월 26일 미군 매체 '성조지(Stars and Stripes)의 지중해 지역판에서 유일하게 한번 다뤄졌다.
하지만 국내 언론이 전한 내용은 아니었다.
'소련은 모든 신탁통치 합의들이 걱정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소련이 신탁통치 전부가 아닌 일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것도 하루 만에 국내로 전파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따라서 소련의 신탁통치 반대 입장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꾸로 전달했거나 거짓 내용을 만들어 흘렸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저술가 임영태씨는 이에 대해 '미군정의 공작'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그는 "당시는 미군정이 언론을 검열했던 때다. 해당 내용이 다른 대중매체도 아니고 군사 매체에서 나온 내용에 기반한 것이라면 미군정이나 일본 맥아더 사령부가 연루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신탁통치에 대한 국내 여론을 잘 알고 있던 미군정으로서는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이 미국이라는 사실이 국내에 알려질 경우 남한 사회가 발칵 뒤집힐 것이며, 그에 따라 미군정의 입지도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언론플레이를 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조선일보는 이후에도 사실관계를 바로잡지 않았다.
거짓 뉴스를 내보낸 다음 날인 12월 28일 '소련의 신탁통치 주장과 각방면의 반대봉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필두로 연일 신탁통치 반대를 선동하는 보도를 실었다.
덕분에 남한에서는 반탁여론을 등에 업은 우익 진영이 급속히 세력을 팽창하고 남한 정국을 주도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됐다.
소련정부와 소련군의 점령을 받고 있던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는데도 한몫을 했다.
이런 흐름은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낳게 된 또 하나의 배경이 됐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