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최근 북한 문제를 둘러싼 그의 발언은 이런 평판과 거리가 있다. 송 대표는 북한이 지난 1일 김여정 담화로 한미훈련 중단을 압박한 직후부터 훈련 불가피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훈련의 방어적 성격, 실병력 기동 없는 지휘소 훈련, 전작권 회수를 위한 검증 필요성 등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훈련 준비가 이미 끝난 판에 미국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다는 현실론도 내세웠다. 군사적, 전술적으로는 거의 완벽한 논리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안정은 고도의 전략적 사고와 정치적 선택을 요구한다. 만일 국정원 분석처럼 한미훈련 중단이 북한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만난을 무릅쓰고 추진할 가치가 있다. 더 큰 국가 이익을 위해 일시 후퇴를 하는 것은 결코 흠이 아니다. '김여정 하명'에 굴복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술적 판단은 군인, 외교관도 할 수 있지만 전략적 결단은 정치 지도자의 책무이자 숙명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현실성 낮은 임기 내 전작권 회수 목표에 연연할 게 아니라 외교안보 현안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한미훈련 연기를 통해 남북 군사적 긴장이 줄어든다면 이는 결국 전작권 회수의 '조건'을 낮추는 결과도 된다. 꽉 막힌 상황에선 발상의 전환으로 근본적 처방을 시도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남북협력 지지 등 비교적 유연한 대북 접근을 표방하고 있다. 이 정도 입장이라면 미국을 설득하는 게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미국으로선 한미훈련이 군사 정책 수준이지만 우리에겐 국가 전략 차원이다. 물론 훈련 연기가 한미동맹에 크든 작든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이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더 중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훈련을 영구 중단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건부 연기조차 마냥 반대한다면 동맹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미훈련은 눈앞의 일이고 개성공단 맥도날드 카드로 북한을 안심시키는 것은 훗날의 꿈같은 목표다. 개성공단 미국 기업 진출은커녕 개성공단 재개 자체도 대북제재에 걸려 한 걸음도 나설 수 없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은 북한의 가시적 비핵화 조치가 있기 전에는 결단코 제재 완화가 있을 수 없음을 거듭 강조해왔다.
이런 워싱턴의 기류를 바꾸려면 우리 쪽의 엄청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2002년 북한을 공격하려 했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설득했다는 김대중 대통령 이상의 결기가 요구된다. 그러나 제재 완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한미훈련 연기조차 주저하는 것을 보면 그저 휘황한 신기루가 아닐지 걱정이 된다.
"역사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라." 19세기 독일을 통일한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이다. 남북관계가 대전환을 이룬 2018년 자주 인용됐던 구절이 다시금 안타깝게 떠오르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