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겪고 싶지 않다"…디지털 성범죄 민낯 마주한 배우들

다큐 영화 '#위왓치유'서 12세 소녀로 카메라 앞에 선 세 배우
아동 대상 성적 학대 빈번하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충격 받기도
많은 이에게 관람 권해…"악과 싸우려면 우선 그 악을 잘 알아야"

(사진 왼쪽부터) 배우 사비나 들로우하, 테레자 테슈카만, 아네슈카 피트하르토바, 비트 클루삭 감독. 어쩌다필름·찬란 제공
평범한 집처럼 꾸며진 3개의 세트장, 책상 위에 놓인 세 대의 컴퓨터 모니터. 그 앞에 12세로 설정한 페이크 계정을 만들고, 12세로 위장한 세 배우들이 섰다. 계정 개설과 동시에 전 세계 남성이 접촉해왔다. 총 2458명의 남성은 '12세 소녀'에게 열흘간 나체 사진 요구, 가스라이팅, 협박, 그루밍 등을 시도했다.


테레자 테슈카만은 프라하 무대예술학교(DAMU) 출신 배우다. 사비나 들로우하와 아네슈카 피트하르토바는 카메라 앞에 서 본 경험조차 없는 비연예인이다.

이 충격적인 디지털 성범죄 검거 프로젝트 '#위왓치유'에 참여한 세 명의 배우들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다시금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할 정도로 이번 영화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악과 싸우려면 악을 알아야 하듯이 이번 '#위왓치유'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디지털 성범죄 추적 다큐멘터리 '#위왓치유' 스틸컷. 어쩌다필름·찬란 제공
◇ 디지털 성범죄,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더 알려져야만 하는 문제

- 어떤 이유로 영화 '#위왓치유'에 참여하기로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테레자 테슈카만(이하 테레자) : 여태껏 인터넷상에서 아동 학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나도 12세 때 인터넷상에서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땐 그런 일이 흔치 않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인터넷이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공간이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였다. 그래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 영화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의돼야 하고, 많이 알려져야만 한다.

아네슈카 피트하르토바(이하 아네슈카) : '#위왓치유'의 캐스팅 조건이 '어려 보이는 외모'였는데, 어릴 적부터 어려 보이는 외모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 보이는 외모를 영화 촬영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영화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상영이 끝난 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를 통해 도움이 될 수 있어 뿌듯했다.

- 만약 '#위왓치유'를 다시 찍는다고 해도 참여할 건가?

사비나 들로우하(이하 사비나) : 촬영하면서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어서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참여할 거다. 이 영화의 주제에 관해서 사회적으로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하니까 당연히 참여할 거다. 온라인상에 뭔가를 올리면 영원히 남는다는 사실을 12세 아이들이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아네슈카 :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감정적으로 한계점을 넘어섰다. 특정한 상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 학대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영화를 찍던 무렵에 전에 발생했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때 분노와 절망이 교차했다. 하지만 오디션 보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의 결정을 바꾸지는 않을 거다.

테레자 : 내가 지금까지 했던 작업 중 가장 힘들었다. '내일은 그래도 오늘보다는 좀 낫겠지'라는 예상은 늘 빗나갔다. 합성해서 만든 나의 누드 사진을 낯선 사람이 온라인상에 올린 뒤, 날 협박하기 시작했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그 사진 속 몸은 진짜 내 몸이 아니다. 진짜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촬영 기간 내가 '#위왓치유' 배우라는 사실 역시 잊을 뻔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했던 작업 중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하면 진정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다시 참여하고 싶다.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 추적 다큐멘터리 '#위왓치유' 스틸컷. 어쩌다필름·찬란 제공
◇ "겁이 나서 영화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울 것…악과 싸우려면 악을 잘 알아야"

- 영화의 주제를 듣고 영화를 못 볼 것 같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아네슈카 :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겁이 나서 영화를 보지 못한다면 안타까울 것 같다. 일단은 한번 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악과 싸우려면 그 악을 우선 잘 알아야 한다.

테레자 :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보라고 하겠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아주 사려 깊게 만들어진 영화다. 나 역시도 처음엔 두려웠다. 6개월간 경험했던 일들이 '#위왓치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 마지막으로 '#위왓치유'를 보는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테레자 : 언제든 부모로부터 절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비밀로 묻어두지 않고, 부모에게 뭐든지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한 걸 '#위왓치유'를 통해 봤듯,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하게 된다. 영화를 찍을 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을 취한 적이 없다. 엄격히 정해 놓은 행동 강령에 따라 대화를 했는데도 기가 막힌 상황에 빠지게 됐다.

자녀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엄격하게 통제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다가가 자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을 위험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지저분한 공간이라 얘기할 순 없지만, 나름대로 정해진 안전 수칙을 꼭 지켜야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사비나 : 부모와 자녀가 함께 영화를 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본 후에 대화를 나눠본다면 더없이 좋을 거 같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SNS를 금지하거나 인터넷은 나쁘다는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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