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여권을 의식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꺼린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리더십의 위기까지 자초했다. 임 부장판사의 탄핵 반발과 김 대법원장의 실책이 맞물리면서 사법부 신뢰를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정국의 핵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22일 김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오간 대화의 녹취파일을 4일 공개했다. 해당 파일에서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국회가)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등 '탄핵'을 수차례 언급했다.
김 대법원장은 바로 전날인 3일 "탄핵 문제를 말한 사실이 없다"며 공식 입장 표명을 통해 논란에 선을 그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임 부장판사가 이처럼 ‘녹취파일’이라는 초강수로 맞서자 곧바로 '거짓 해명' 논란에 불이 붙었다. 몇 시간 뒤 김 대법원장은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다"며 사실과 다르게 말했음을 시인했다.
사법부 수장의 입장이 하루 만에 번복되자 법원 내부에서는 곧바로 '충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의 해명이 거짓말이 됐고 이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가 사표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한 대목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기보다는, 자신에게 쏠릴 정치권의 비판을 우려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막은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탄핵 대상이 된 임 부장판사의 이 같은 역공식 폭로에 김 대법원장이 논란을 자초하면서 '법관들의 성역은 있을 수 없다'며 추진된 탄핵 관련 논의는 극단적인 정치공방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김 대법원장의 정치 편향성을 문제 삼아온 야권은 녹취가 공개되자 사법부 신뢰에 물음표를 달며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핵 대상"이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과의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공개한 임 부장판사의 행위를 놓고도 시선이 곱지 않다. 임 부장판사 측은 내용을 기억하기 위한 차원의 녹음이라는 취지로 설명했지만, 탄핵 위기를 피하기 위해 계획적인 행보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재경지법의 한 현직 판사는 "여러모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국회가 4일 오후 본회의에서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며 헌법재판소는 본격 심리 절차에 돌입했다. 헌재의 탄핵심판에서는 직권남용의 법리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법관 신분에서 파면할 만큼의 위헌적 행위인지를 검토하게 된다.
다만 임 부장판사가 재임용을 불희망해 오는 28일부로 임기가 종료된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다음달 1일부터 민간인 신분이 되는 임 부장판사가 파면 대상이 될 수 있는 지를 두고서는 법조계 의견이 갈리는 만큼, 헌재가 이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놓는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