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학자 "울지도 못할 정도로 다친 정인이, 발로 밟혔다"

"지속적 학대로 상태 나빠진 아이…사망 가능성 몰랐을 리 없다"
검찰, 양모 장씨에 '살인죄' 적용

'정인이 사건' 피의자 양부모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인 지난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검찰은 최근 '정인이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건)의 첫 공판기일에서 양모 장모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애초 장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한 검찰은 손상의 치명성, 살인의 고의 등을 입증하기 위해 법의학자들에게 재감정을 의뢰했다.

재감정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장씨가 정인이의 복부를 발로 밟았다', '학대가 지속됐다'고 결론 내며 장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정인이의 몸에 남은 학대 흔적이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바뀐 공소장에 담긴 그날의 학대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에게 장기간 학대를 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종료된 지난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시민들이 정인이의 양모 장모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소 차량을 두들기며 분노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검찰은 13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신혁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장씨와 양부 안모씨의 첫 공판기일에서 장씨의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살인죄와 아동학대치사죄를 각각 주위적·예비적 공소사실로 적시했다.

증거 조사와 심리 등을 거쳐 형량이 더 무거운 살인죄가 인정되면 살인죄로 처벌하되, 소명이 부족할 경우에는 지속적인 학대로 숨지게 한 혐의를 적용해 처벌해 달라는 의미다.

검찰은 정인이의 사망 원인이 '발로 밟는 등 (행위로) 복부에 넓고 강한 외력이 가해져 췌장 파열 등 복부가 손상되고, 이로 인해 과다 출혈이 난 것'이라고 판단했다.

살인의 고의 여부를 두고는 '피해자가 사망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인식과 이를 용인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어, 살인에 대한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장씨의 공소사실을 보면, 장씨는 지난해 10월 13일 오전 9시 1분부터 10시 15분경 사이에 자신의 집에서 정인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격분해 양팔을 강하게 잡아 흔드는 등 폭행하고, 복부를 수차례 때려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 뒤 발로 정인이의 복부를 강하게 밟는 등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을 절단시키고, 600mL 상당의 복강 내 출혈 및 복부 손상으로 정인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검찰은 장씨가 정인이의 사망 가능성을 인식·예견했다고 봤다. 검찰은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진 16개월 아이 복부에 강한 둔력을 행사하면 아이가 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양모 "떨어뜨렸다"…법의학자 "발로 밟았다"


양모 장모씨가 지난 11월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 당일의 가해 행위에 양부모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장씨 측은 정인이의 장기 손상을 두고 '흔들다가 떨어뜨려 의자에 부딪혔다', '병원으로 가는 택시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인 것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씨가 정인이를 밟았다'고 판단했다.

재감정에 참여한 이정빈 가천대 법의학과 석좌교수는 전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양모가 정인이의 배를 발로 밟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장씨가 발로 정인이의 복부에 강한 둔력을 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부검 결과 정인이는 소장과 대장 장간막열창, 췌장 등이 절단돼 있었다. 이 교수는 "굉장히 큰 손상이 났는데, 부검해서 보니 피하조직에 출혈이 없었다. 부검의는 멍이 있다고 하지만 멍이 아니었다. 배에 들어간 피가 바깥에 내비쳐 멍처럼 보인 것"이라며 "이처럼 손상이 없으면 발처럼 (접촉면이) 넓고 속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힘은 질량에 비례하고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속도가 떨어지고 면적이 넓으면, 무게를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인이 사망 당일, 장씨가 자신의 발에 무게를 실어 정인이의 복부에 힘을 가했을 것으로 판단한 이유다.

장씨가 지난해 9월 받은 가슴 수술로 팔에 통증이 있다는 양부모의 진술도 가해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

양부 안모씨가 지난 13일 첫 재판을 마친 뒤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민 기자
검찰 등에 따르면 양부 안씨는 조사에서 "장씨가 정인이 사망 당일 현장 감식이 끝난 뒤, 차를 몰고 집에 갔는데 그 후 팔이 아프다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사망 당일 경위에 대해 "아이를 들어올리다가 (통증으로) 힘이 없어 떨어뜨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운전하는 경우 손이 눈높이보다 아래에 있고 핸들 위에 탁 놓는 정도인데, 적어도 장기가 파열될 정도로 치려면 사람 머리 위까지는 올렸다가 쳐야 한다"며 "장씨 주장대로라면 손보다는 발로 밟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장씨의 주장도 하나하나 반박했다. 이 교수는 "정인이를 떨어뜨려 등 부위를 의자에 부딪혔다면, 등뼈·척추뼈·어깨뼈 등에서 모든 힘을 흡수해 장기 중에서는 간부터 손상되는데, 정인이는 간 손상이 없다"고 했다.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장기 손상이 발생했다는 장씨 주장을 두고는 "턱도 없는 소리"라며 "심폐소생술로는 부러질 수 없는 곳들이 다쳤다"고 말했다.

재감정을 한 다른 법의학자도 정인이 피부에 상처가 없는 점, 대량 출혈이 발생한 점 등을 들어 정인이가 발로 폭행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끊임없이 이어진 학대…"'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을 것"

지난 4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아이는 내내 고통에 시달렸을 겁니다. 늑골 골절이 7군데가 나왔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치유된 것도 있고, 치유되고 있는 것, 최근에 생긴 골절도 나와요. 나으려고 하면 또 때린 겁니다."

강한 폭행이 지속해서 가해진 흔적도 정인이 몸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교수는 "입양 직후부터 최소 4~5개월 동안 서로 다른 시기에 발생한 갈비뼈 골절이 7곳"이라며 "췌장을 비롯한 주변 장기는 섬유화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사망 전에도 췌장에 손상을 입힐 정도의 힘이 여러 번 가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장씨는 조사에서 "정인이가 원래 잘 울지 않는 아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이 교수는 "울지 않는 아이가 아니라, 아파도 울지 못한 것"이라며 "늑골은 숨 쉬는 데 작용하는 곳이라 (다치면) 심호흡을 해도 아프다. 울지도, 웃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살인죄가 유죄로 인정되는 데 관건이 될 '고의성' 여부를 두고는 "재판과 수사의 영역"이라면서도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를 밟더라도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성인이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살인의 고의는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라고 했다.

1차 공판에서 양부모 측 변호인은 "(정인이) 양팔을 잡아 흔들다가 가슴 수술로 인한 통증으로 피해자를 떨어뜨린 사실은 있지만 고의로 숨지게 한 것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원들이 지난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담벼락에 정인양을 추모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취지가 담긴 근조화환을 설치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한편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달 초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정인이 사건'(양천 아동학대 사건) 관련 보고를 받은 뒤 살인죄 적용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남부지검은 13일 "기소 후 추가로 확보된 사망 원인에 대한 전문가 의견 조회 결과와 피고인에 대한 대검찰청 통합심리 분석 결과 보고서 등을 종합해 검토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이와 같은 사정들이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과 함께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만 받고 있는 양부 안씨에게도 살인죄가 적용돼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날 기준 23만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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