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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지…" 코로나에 우울한 노인들 (계속) |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계속 이어지던 지난 10일 강원 강릉시 입암동의 한 아파트단지 앞. 머리칼을 헤집어 놓을 정도로 부는 차가운 바람에도 노인들은 옷을 꽁꽁 싸맨 채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독거노인들이 많이 사는 해당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입을 모아 우울함을 호소했다.
"오늘도 티비만 보다가 점심에 밥 한 숟가락 뜨고 나왔어. 너무 답답하니까…여기 벤치에 그냥 앉아 있기라도 해야 우울증에 안 걸리지. 이렇게라도 안 나오면 숨 막혀 죽어…"
'코로나에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취재진 질문에 김모(76)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쏟아냈다.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시간인 까닭에 여느 때 같으면 어르신들로 북적여야 할 공원이 썰렁했다. 노인 2명만 벤치에 덩그러니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옆에 있던 문모(75) 할머니가 "우리는 옛날에 6.25 전쟁을 경험하면서 배고픔 보릿고개 다 겪고 살았는데, 늙어서 살만하니 코로나를 겪고 있다"며 "세상을 자꾸 비관하게 되고, 왜 이런 난리를 또 마주해야 하는가 싶은 생각에 우울하다"고 말했다. 문 할머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권모(80) 할머니는 "경로당에 가면 그나마 웃고 스트레스도 풀고 하는데 문을 닫으면 집에만 있어야 하니, 그게 곧 지옥이지"라며 "겨울이 오면서 날이 더 추워지면 바깥 산책도 어려울 텐데, 경로당까지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강릉 관내 304개 경로당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월 28일부터 10월 18일까지 휴관했다. 여름철 무더위쉼터 운영으로 지난 7월 9일부터 8월 23일까지 임시 개관했을 때를 제외해도 올해 절반은 문을 열지 못했다. 취재할 때까지만 해도 일부 경로당은 운영이 재개됐지만, 강릉시에서 지난 11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면서 관내 모든 경로당은 다시 문을 닫았다. 이후 지난 17일 다시 2단계로 내려갔지만 노인 복지시설은 여전히 폐쇄됐다.
강원도에 따르면 지난 21일을 기준으로 18개 지자체 시·군 내 경로당 3217곳과 복지관 16곳 중 각각 2980곳, 13곳이 잠정 폐쇄됐다. 노인 교실 63곳은 모두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감염확산이 크지 않아 타지역보다 대면조사가 원활했던 제주지역에서 진행한 노인 관련 연구자료를 통해 정신건강 실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주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와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가 제주 고령자 1천 명, 예비고령자 300명 등을 대상으로 지난 9월부터 2달 동안 조사한 결과 80세 이상 어르신들이 우울함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연령대별로 우울함을 느끼는 정도는 57~64세 9.3%, 65~69세 13.9%, 70~74세 16.1%, 75~79세 15.7%, 80세 이상 23.4% 등으로 나타났다. 독거노인이면서 교육,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우울감 정도는 더 높았다.
또 코로나로 인한 불편함 1순위로 가족이나 친구 등 아는 사람들의 왕래감소(70.5%)를 꼽았다. 이어 운동이나 친교모임 감소(46.3%), 마트나 병원을 비롯한 대중시설에 갈 수 없음(38.8%) 등 순이었다. 기초적인 일상생활 유지의 균열은 곧바로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제주 노인들 절반 이상이 "코로나로 인해 우울하다"고 답했는데, 그중 서귀포 동부지역 어르신들은 무려 61.9%가 "우울하다"고 응답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어 "80세 이상 어르신들은 신체적으로도 노화가 진행돼 어쩔 수 없이 우울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코로나 상황까지 겹치면서 피로가 높아진 상황"이라며 "코로나 블루와 관련한 맞춤 프로그램을 고민해 예방 등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석재은 교수는 "그나마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경로당 등 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노인들이 다시 집으로 고립되는 상황"이라며 "다른 근로 연령층은 그나마 일을 통해 사회적으로 연결돼 있지만, 노인들은 그렇지 못해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