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교도소가 수감한 교수, 성범죄자 아니었다…"매장당했다"

디지털교도소, 지난 6월 교수 신상공개
욕설 문자·전화 이어지고 직장에까지 영향…"인격말살 행위"
경찰에 성명불상 운영자, 조작자 고소
포렌식 결과 "실제 대화 내용 존재하지 않아"…합성 가능성
경찰, 디지털교도소 관련 수사 진행…사이트 접속 불가

디지털 교도소(사진=연합뉴스)
성범죄 등의 의혹을 받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임의로 공개하는 사이트 '디지털교도소'가 '성착취물 구매를 시도했다'며 한 대학교수의 개인정보를 공개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이트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대학생이 최근 숨진 데 이어 게재된 정보가 허위로 드러나면서 위법성 논란에 불이 붙었다.

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6월 디지털교도소가 '성착취물 구매를 시도했다'며 홈페이지에 신상을 공개한 채정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경찰 수사 결과 이 같은 의혹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디지털교도소는 채 교수를 자칭한 이에게 온 텔레그렘 메시지 캡처본을 공개했다.

캡처본에서 채 교수를 자칭한 이는 "현 정신과 의사다.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임상 연구 중인데, 'n번방' 자료가 있다면 모두 받아보고 싶다", "텔레그램 채팅 합성이나 해킹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채 교수의 개인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일부 언론은 이 같은 의혹을 보도했다.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뒤, 채 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만 고통받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매장을 당했다"고 말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와 문자 수백통이 왔다. "죽어라", "그냥 자살해라"…휴대폰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속해있던 학회에서도 그가 '비윤리적인 의사'라는 문제 제기가 나왔고, 그는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맡았던 강의에서도 물러났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가 치료한 환자의 한 마디였다. 환자는 채 교수에게 "믿었던 사람이 이러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생각한다. 우울해진다. 살고싶지 않다"고 했다. 채 교수는 "간신히 회복됐던 이들이 (나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보며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수감자'들의 고통을 먹고 산다. 앞서 디지털교도소는 자신들이 '지인능욕'범(지인의 사진에 불법촬영물 등을 합성하는 성범죄)으로 지목한 한 대학생이 최근 숨지면서 비판 여론이 일자 증거들을 제시하며 이에 반박했다. 학생의 사망 소식에 욕설로 얼룩진 말들이 다시 채 교수에게 쏟아졌다. 채 교수는 "휴대폰을 바꿀까 고민도 했지만, (죄가 없기 때문에) 견뎌보기로 했다. 하지만 견디기 정말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성명불상 운영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뒤에야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에 보낸 공문. 분석결과 및 의견에서 "고소인의 휴대전화에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것과 같은 내용의 대화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자 작성 습관 등을 상호 비교한 결과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자는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자료=채정호 교수 제공)
대구지방경찰청이 지난달 31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경찰은 채 교수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삭제된 데이터를 포함해 채 교수의 휴대전화에서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것과 같은 대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에서 고의로 삭제한 것으로 보이거나 성착취물을 구매하려는 것으로 의심할 만한 대화, 사진, 영상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채 교수를 사칭한 이가 디지털 교도소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누군가 메시지를 합성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내용과 채 교수의 휴대전화에서 추출한 메시지 9만 9962건의 문자 작성 습관을 비교한 결과, 서로 일관되게 달라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자는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채 교수 측은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텔레그램 대화 캡처본을 보면, 대화창 경계선이 왜곡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이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윤리위원회에 보낸 공문. 분석결과 및 의견에서 "고소인의 휴대전화에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재된 것과 같은 내용의 대화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문자 작성 습관 등을 상호 비교한 결과 디지털교도소의 텔레그램 채팅을 한 자는 채 교수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자료=채정호 교수 제공)
채 교수는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다는 데 동의하지만, 디지털교도소가 고수하는 방식은 '인격 말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로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한편 대구지방경찰청은 디지털교도소 관련 고소·고발 사건들을 취합해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서버가 해외에 있으며 운영자가 여러 명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일부 운영자를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디지털교도소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다음은 채 교수와의 일문일답.

채 교수 측이 대화창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제시한 근거. 채 교수 측은 대화창 상하단을 비교했을 때, 상단의 대화창 경계선이 왜곡돼 있으며, 대화창 경계선 등도 왜곡돼 있다고 말했다.(자료=채정호 교수 제공)


[일문일답]채정호 교수
- 디지털교도소에 본인의 신상정보가 오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 처음엔 몰랐다. (게재되고) 며칠 뒤인 일요일 밤 늦게 연락을 주셨다. "본인도 디지털교도소에 올라가 있는 피해자인데, 당신도 피해받는 것 같아 알려주겠다"며 사이트 주소를 보내왔다. 이상한 주소인 것 같아 눌러보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하고 나서,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수없이 많은 욕설 전화·문자를 받았다.

- 큰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다.

= 한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일이었다. 인터넷 공간은 무한히 확대 재생산된다. 무차별적으로 SNS를 통해 전파됐다. 저를 아는 사람들이야 제 설명을 들어주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를 그저 그런 식으로 취급하게 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진짜라고 믿으시는 거다. 보도를 접하지 않은 분들은 지금도 그렇게 믿어버리실 거다. 온라인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인격이 말살됐다. 사회적으로 매장됐다.

- 경찰 수사 결과, 어느 정도 진실이 밝혀졌다. 조작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데 누구의 소행이라고 보는가.

= 디지털교도소의 대응을 보면 그쪽에서 만든 게 아닌지도 의심된다. 저나 제 제자를 사칭하는 댓글도 달려 있었다. 경찰에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와 가상의 조작자, 이 성명불상자 두 명을 고소했다. 누가 그랬는지 알아야, 그 사람을 잡아야만 끝날 수 있다. 아직도 답답하다.

- 디지털교도소 측은 성범죄 등에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는 수사기관과 사법부 대신에 자신들이 범죄자들을 사회적으로 심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기본적으로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고 성범죄 피해자들이 엄청난 피해를 받는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사법이 미흡하면 법을 개정해 그에 맞게 형량을 늘려야지, 아무리 옳은 뜻이 있어도 사법체계를 개인이 운영하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 3심제도 등을 두는 것인데, 디지털교도소는 이와 같은 장치가 없다. 사이버 교도소지만, (피해는) 가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고 그 사람을 감옥에 넣을 수 있는 일을 개인에게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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