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이 'n번방'에 잠입해 수개월간 증거를 모아 사건을 폭로하는 등 위법소지를 무릅쓰고 제보한 상황에서 더 이상 민간에 이러한 '간접수사'를 맡겨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 잠입수사 검토 논의…"미룰 수 없는 상황"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검찰청 검찰개혁추진팀은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한 중요범죄들에 대해 잠입수사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버닝썬 사태'로 드러난 마약·조직범죄와 최근 n번방의 성착취 범죄 등에 대해 잠입수사 필요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장기과제로 설정했다. 마약·조직범죄수사청(마약청) 등 전문 외청이 설치될 경우 이를 통해 잠입수사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 등이 아이디어로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잠입수사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며 극히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범죄의사가 없는 범죄자에게 범죄의사를 갖게 하는 식의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불법이다.
단, 마약이나 성매매 수사 등에서 범의가 있는 범죄자에게 접근한 뒤 상대방이 범죄 실행에 착수하면 검거하는 '기회제공형' 수사는 가능하다. 예를 들면 형사가 마약상으로 가장해 투약범 등을 색출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일반인인 척 마약상에게 접근해 상대방이 거래에 응할 때 검거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범죄수법이 갈수록 고도화·음성화되면서 더 이상 기회제공형 수사만으로는 주요 범죄자들을 색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잠입수사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1월 부산경찰청 소속 경위 A씨는 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 B씨에게 해당 조직에 잠입해 증거를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조직의 총책 등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만 '위법수사'로 징계를 받게 됐다.
각종 피싱범죄들은 대부분 조직이 해외에 퍼져있고 업무가 세밀하게 나뉘어 있어 잠입수사가 아니면 총책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현행 수사제도 하에서는 말단 조직원들을 붙잡아 추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버닝썬 사태 이후 경찰이 마약사범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 3개월 만에 3833명을 검거했지만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받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지난해 5월 기준 검거인원 3833명 중 투약·소지범이 69.8%로 대부분이었고 판매상은 22.5%, 밀반입·경작은 7%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대검의 한 간부급 검사는 "마약을 반입·유통하는 뿌리를 캐야 하는데 잠입수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니 '기회제공형' 수사로 일반 투약자들만 대거 잡아들이는 상황"이라며 "국제적으로도 광범위하게 도입된 잠입수사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백이 있는 수사영역을 피해자나 언론 등 민간이 채우게 되면서 위법성에 노출되는 최근 상황도 잠입수사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n번방에 잠입한 추적단 불꽃이나 이후 취재를 위해 잠입한 언론사 등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와 비슷한 모든 경우에 보호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검·경 수사권 충돌, 잠입수사 도입에 영향 미치나
그러나 잠입수사 도입과 관련해 법무부 관계자는 "논의 테이블에 올라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잠입수사 자체가 수사자의 불법행위 가담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원론적인 문제와 더불어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라는 정책적인 문제와도 결부돼 있어 껄끄러운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을 거쳐 검찰청법상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 및 대형참사 등 '중요범죄'로 국한됐다. 중요범죄의 해석과 관련한 검찰청법 시행령에 마약, 성범죄, 조직범죄 등이 포함돼야 검찰의 전문 수사관 양성이나 잠입수사제도 논의도 첫발을 뗄 수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 중요범죄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을 두고 경찰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이어서 이에 연동된 과제인 잠입수사 논의 등도 멈춰있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잠입수사와 관련한 위법성 논란은 내부 심의위원회를 통해 범행개입 등의 수위를 조절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n번방 등이 '중요범죄'라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밥그릇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검·경이 함께 제도개선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