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덕식 판사'가 물러남으로써 성착취물 관련 법원의 판단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오 부장판사의 판결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성범죄 사건에서 법원의 '표준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n번방' 수사 과정에서 이달 5일 기소된 '태평양 원정대' 방의 운영자 이모(대화명 '태평양')씨 사건을 형사22단독(박현숙 판사)으로 재배당했다고 30일 밝혔다.
원래 오 부장판사에게 배당됐던 사건이지만, 지난해 최종범 사건(고 구하라씨 상대 협박·상해) 등에서 가해자 친화적 판결을 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스스로 재배당을 요구했다.
매우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바뀌게 됐지만, 텔레그램 성착취물 재판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있는 성범죄 전담 재판부 12곳(합의부 8곳·단독4곳)의 최근 판결문들과 재판 과정을 보면 오 부장판사가 감형사유로 적시한 요건이나 형량의 범위, 심리 방식 등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오 부장판사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선고해 확정된 판결문 12건에는 △피고인이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음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고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함 △가족들도 피고인의 치료에 노력할 것을 다짐함 등이 공통된 감형사유로 적시됐다.
특히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나 합의·용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반성이나 재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감형사유로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
해당 피고인은 동종범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데다 아동·청소년 음란물도 200여건 소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면서 재범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촬영물을 최초 유포한 것은 아니고 음란물 제작에 관여된 것도 아니어서 유리한 정상이 있다"고 감형 사유를 밝혔다.
오 부장판사를 포함한 다수 법관들의 이같은 인식은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에 합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성범죄 일반양형인자에는 △진지한 반성과 △형사처벌 전력 없음 △소극 가담 등이 감경요소로 적시돼 있다.
'태평양' 이씨 사건을 맡게 된 박현숙 판사가 '이례적으로' 16세인 이씨의 연령과 부모의 선도 다짐, 본인의 반성 등을 외면하고 엄벌을 내린다고 해도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도돌이표' 판결이 나오기 충분한 상황인 것이다.
여성변호사회의 한 변호사는 "반성엔 피해자의 회복이 전제가 돼야 하고 수십번 범행 후 잡힌 범죄자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고 해서 '초범'으로 봐선 안된다"며 "남이 불법촬영한 사진을 유포한 행위는 '소극 가담'이 아니라 더욱 중대한 범죄로 처벌해야 맞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