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일로 미국 등 겨냥, 특별입국절차 전 세계 확대

특별입국절차 유럽 확대 첫날, 정부 "일부 적용 의미 없다. 전 세계로 확대할 것"
간과했던 미국·남반구·개도국 등의 입국자도 검역 강화 시급해
문제는 한정된 방역자원…국내 상황 아직 방심 못해
"이미 입국자 규모 줄었을 것…검역조치 강화 불가능한 수준 아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박능후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5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공)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상황에 따라 정부가 특별입국절차 적용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다만 국내 집단 감염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어 한정된 방역 자원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150개국이 감염된 '팬데믹 상황', 유럽에 이어 전 세계로 '특별입국절차' 확대

정부는 지난 15일 0시를 기해 '특별입국절차'를 기존 중국, 홍콩, 마카오, 일본, 이탈리아, 이란에 더해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5개국까지 총 11개 지역으로 확대 시행했다.

그런데 바로 이날 오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박능후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조만간 입국하는 모든 내외국인들에 대해서 특별입국절차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박 1차장은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특정한 나라를 구분해서 특별입국절차를 적용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며 이 날 정부가 단행한 특별입국절차 확대 조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기까지 했다.


이어 "실무적으로 행정력이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지, 또 준비가 뭐가 필요한지 등을 따져서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전 입국자에 대해서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불과 하루도 채 지나기 전에 특별입국절차에 대한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정부는 일단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언한 팬데믹 상황을 명분으로 들었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발견된 국가만 150개국에 달한다. 확진자 수도 약 16만명으로 첫 발원지인 중국과 나머지 국가들의 환자 수가 각각 8만여 명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에 도달했다.

더구나 유럽, 북미 등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아직 '시작' 단계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 마당에 주요 '오염 지역'의 입국자만 감시해서는 검역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악화일로 미국, 위험 평가 어려운 개도국, 겨울 맞을 남반구…세계 곳곳이 위험지역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신고된 미국 주별 코로나19 보고사례(그래픽=CDC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때는 지난 11일, 정부가 네덜란드 등 5개국을 특별입국절차 대상으로 묶어 사실상 유럽 전체의 입국자를 모니터링하겠다고 발표한 때는 바로 다음날인 12일이다.

WHO의 팬데믹 선언 직후만 해도 유럽 입국자만 거론했던 정부가 사흘 만에 전 세계로 특별입국절차를 확대하기로 입장을 바꾼 결정적 변수로는 우선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미국이 꼽힌다.

미국은 확진자 수 3천여명, 사망자는 60명으로 각각 세계 8위, 7위에 해당하는 명실공히 코로나19 고위험 국가지만, 한미 관계의 특수성과 국내 정치적 지형 등을 감안하면 미국을 콕 집어 오염지역으로 지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미국은 유럽보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확진자·사망자 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 9일만 해도 537명에 불과했던 확진자 수가 일주일 만에 5배 이상 늘어난데다, 진단 시약·인력 부족 문제가 끊이지 않아 숨어있는 환자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아 더 이상 검역 강화 조치를 미루기 어려워 보인다.

특별입국절차를 비껴간 위험지역은 미국만이 아니다. 한국의학연구소 신상엽 위원장은 "교통으로 전 세계가 이어진 지구촌에서 위험 수준을 평가조차 할 수 없는 개발도상국이야말로 대규모 감염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두 달만 지나면 호주, 남아프리카, 남미 등 남반구도 겨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더 위험해질 것"이라며 "시작 시점이 다를 뿐, 결국 전 세계로 코로나19가 다 퍼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상황도 방심 못하지만…특별입국절차 확대, 오히려 지금이 적기?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특별입국절차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결정 자체는 시간 문제나 다름없다. 진짜 문제는 대거 늘어날 특별입국절차 대상에 투입할 방역자원을 정부가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냐는 점이다.

아직 구로 콜센터, 해양수산부 공무원 및 전구 곳곳의 요양병원 등 집단 감염 사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국내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손장욱 감염내과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천지라는 불을 간신히 껐을 뿐, 지역에서 작은 클러스터(cluster, 감염자 집단)가 발생할 수 있어 그만한 여력이 있을지는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이단신천지 신도에 대한 전수검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대구·경북에서 급증했던 환자 증가폭이 두 자릿수로 줄어든 지금이야말로 해외 환자 유입을 막을 기회이기도 하다.

강남성심병원 이재갑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입국자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소화 가능한 단계일 것"이라며 "사태 초기 중국에서 만여 명이 넘게 입국할 때도 잘 감시했기 때문에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내다봤다.

신상엽 위원장도 "우리는 코로나19에 대한 정보도, 경험도 있어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며 "앞으로도 집단 감염이 발생하겠지만, 신천지 유행과 같은 규모로는 나타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특별입국절차는 이른바 '가성비'로 따져봐도 나쁘지 않다"며 "국내 환자 1명에 수백명이 투입되기도 하는 역학조사와 달리 단순히 공항의 동선, 인력을 배치하고 연락처를 확보하는 검역 조치는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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