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직권남용 따른 하급자…피해자일까 공범일까

검사의 직권남용 선별적 기소에 '제동'
공직자가 주 대상인데…범위 좁아져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늘 하던 일 같지만 어딘가 찜찜한 상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른 하급자는 직권남용 범죄의 피해자일까 공범일까.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 구체화된 법리를 제시하면서 지시 이행자가 '의무 없는 일'을 했는지에 집중했다.

그간 직권남용 범죄에서 검찰은 직권남용으로 위법한 지시를 한 조직 내 고위층에 주목해왔다. 반면 위법한 지시를 이행한 사람은 사안에 따라 선별적으로 기소하고 때에 따라서는 피해자로 규정했다.


실제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는 최흥집 전 사장의 지시를 받아 부정한 선발행위를 진행한 인사팀장이 별개로 기소된 여러 사건에서 공범이 됐다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모순이 생겼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이처럼 들쭉날쭉한 법 적용을 시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의 상대방이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의 임직원인 경우 법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지위에 있다"며 "그가 직권에 대응해(지시에 응해) 한 일이 의무 없는 일인지는 관계 법령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나온 블랙리스트 사건에 비춰보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윗선의 지시로 하급 공무원이 한 행위들을 '뭉뚱그려' 기소해선 안되고 일일이 나눠 위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법원은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했던 행위 일부를 분리했다. 단순히 문화예술인 명단을 전달한 행위 등은 '의무 없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해당 부분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여기에 안철상·노정희 대법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최종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기본이어야 한다"고 검찰 기소내용을 재차 지적했다.

단순히 직권남용의 지시를 이행해 '위법해 보이는' 일을 한 상황까지 끊어서 기소를 하게 되면 그러한 행위로 인한 '최종 결과'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좌파' 문화예술인을 배제하기 위한 각종 행위가 이뤄진 부분과 관련해 '직권남용으로 (하급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기소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로 인해 해당 문화예술인들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결과가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라고 본다면 '직권남용으로 (문화예술인들의) 권리행사가 방해됐다'고 기소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렇게 기소 내용이 바뀌게 되면 '의무 없는 일'을 해야만 했던 하급자들은 '피해자'에서 문화예술인의 정당한 권리행사 방해라는 결과를 초래한 '공범'이 된다.

대법원의 이번 판례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편리한 기소에 일부 제동을 건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직권남용 이후 하급자가 지시를 이행한 점까지 기소를 할 것인지, 그 이후 실제 누군가의 권리행사가 방해된 부분까지 기소할 것인지를 비교해 보면 입증 등에서 전(前)자가 훨씬 용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박상옥 대법관이 이번 블랙리스트 사건의 직권남용죄는 '무죄'라며 소수의견을 내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박 대법관은 "목적 달성 과정에서 이뤄진 행위들을 '의무 없는 일'로 포섭해 기소하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처벌 범위가 무한하게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판결로 직권을 남용한 상급자와 더불어 '위법한 지시를 이행한' 하급자의 책임이 훨씬 커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검찰은 매우 폭넓게 규정된 공직자의 여러 업무상 지위나 의무, 목적 등을 따져보고 실질적으로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직권남용 범죄가 사인을 대상으로 하기 보단 공직자들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성립 요건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에 하던 직무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 법망을 피해갈 소지가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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