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① '악플' 판결, 전수 분석해보니…"아는 사람이 더 악질 ② 목숨 빼앗는 악플로 유죄 받아도…"낼만한 벌금 수두룩" (계속) |
◇ 악성 댓글 집행유예 이상은 8%25뿐…벌금 평균 120만원
# 지난 2017년 대서양에서 22명의 선원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직원 A씨는 이듬해 3월 침몰 사고를 다룬 언론 기사 아래 "에휴~ 그저 돈돈돈~ 되도 않는 거짓 부렁 씨부리지 말고 죽은 동생 팔아서 큰 거 한 몫 챙기고 싶다고 솔직하게 얘기해라", "앞에서는 온갖 거짓말로 심해수색 타령, 뒤에서는 선사에 합의금 50억 요구. 아참, 최근엔 60억으로 올려서 얘기한다지? 위선의 극치인 당신들의 시커먼 속내를 제발 많은 사람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 라는 댓글을 달았다. 실종자 가족은 선사에 합의금으로 50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언론에 나온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다소 과격한 표현이 사용됐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실종자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 B씨는 2018년 1월 온라인 게임을 하던 중 피해자와 시비가 붙었다. 화가 난 B씨는 해당 게임의 인터넷 카페에 접속해 피해자와 다른 게임 유저가 성관계를 했다는 허위사실의 게시물을 올렸다. B씨는 이어 피해자가 올린 다른 게시물에 "애미는 몸팔러다니든데"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미 모욕죄로 두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던 A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형법상 악성 댓글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적용된다. 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욕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하지만 위의 경우처럼 징역형 등 높은 수위의 처벌을 받는 사례는 극소수다.
징역형 집행유예 이상을 받은 사건은 단 8%(11건)다. 2017년 8월 C씨는 피해자가 운영하는 쇼핑몰 페이지에 들어가 "오빠 저 폭행한거 기사 떳어요 어뜨케", "나 어제 오빠랑 같이 잤다", "저번에 돈 빌려달라고 하신거 거절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오빠 사랑해요" 등 30회에 걸쳐 댓글을 썼다. C씨는 피해자와 연인관계가 아니고 성관계를 하거나 폭행을 한 사실도 없었다. 심지어 C씨는 이전에도 피해자에게 집착하며 225회 이상 사생활에 대한 허위 사실의 댓글을 달아 벌금 3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5개월을 선고했다.
이렇게 징역형 이상을 받은 사건들은 통상 악성 댓글 사건에 적용되는 모욕죄이나 명예훼손죄뿐 아니라 음란물 유포나 업무방해, 보복협박 등의 혐의가 함께 적용된 것이 대부분이다. 악성 댓글의 개제횟수 또한 최소 1회(음란사진 포함)에서 39회, 60회, 295회까지 반복적이었다는 특징이 있다.
악성 댓글만으로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마는데, 변호사들은 "악플 사건은 약식기소가 대부분"라고 입을 모은다. 정식으로 재판도 진행하지 못한 채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선플SNS인권위원회 공익법률지원단장으로 활동했던 윤기원 변호사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초범이라면 교육조건부 기소유예나 경미한 벌금 처분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홍남희 전문연구원은 "악성 댓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100만원 이하의 ‘낼만한 수준’의 벌금이 대부분인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 악성 댓글로 인한 이미지 타격만 있고 큰 배상이나 사회적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설리와 구하라씨 사건을 계기로 악성 댓글의 처벌이 가볍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무분별한 악플을 규제하기 위한 국회의 움직임도 있긴 하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인터넷 준실명제 도입으로 댓글 작성시 책임감을 높이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댓글 아이디의 풀네임을 공개하고 IP를 공개해 온라인 댓글의 책임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 역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혐오 표현 등을 삭제할 수 있는 의무를 부과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용자가 인터넷 등에 유통되는 정보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혐오 차별 표현의 내용을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일명 '설리법'이라고 불리며 반짝 주목받았던 이들 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비보에 각 정당도 앞다퉈 악플을 근절하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관련 법안은 심사도 이뤄지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결국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이고 관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악플에 대한 ‘처벌의 확실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윤기원 변호사는 "스토킹 같은 지속적인 괴롭힘이 경범죄 처벌법으로 간단하게 처벌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악성 댓글도 경범죄 처벌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며 "악성 댓글 처벌에 대한 확실성을 준다면 사람들이 댓글을 조심해야겠다는 인식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 이수연 변호사도 "이전에 비해서 인터넷이나 SNS의 파급력이 커짐에 따라 피해자가 입는 고통이 막대한데 법원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갈수록 커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법원이 양형에서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해(2019년) 악성 댓글과 관련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판결문을 전수 조사했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통해 '댓글', '악플' 등의 단어로 판결문을 검색한 뒤 내용을 확인해 기준에 맞는 사건들을 추렸다. 대법원에서 비공개 결정한 판결문은 제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