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며 여의도 증권범죄 '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던 합수단의 폐지 소식으로 한탕주의 범죄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증권범죄 수사 '컨트롤타워' 합수단 폐지에 여의도 증권가 '촉각'
증권범죄는 '치고 빠지기' 수법으로 이뤄지는 만큼 빠른 수사 속도가 생명이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주가조작범들이 범죄 수익을 챙겨 해외로 도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당장 코스닥 상장사 리드의 수백억원대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라임자산운용 이종필 부사장만 보더라도, 수사망이 좁혀온 뒤 도주했는데 현재까지 두 달째 검거되지 않고 있다.
합수단 신설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바로 '속도'다. 거래소나 금감원 조사 없이 곧바로 수사 기관에 회부하는 '패스트트랙' 제도가 활성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합수단이 문을 닫으면 이런 제도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여의도 증권가가 합수단 폐지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신라젠이나 상상인저축은행 등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기업 주가가 한때 급격히 오르는 등 요동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신라젠 경영진들은 임상실험 실패를 공시하기 전 보유 주식을 대량 매도한(미공개정보 이용) 혐의로 지난해부터 합수단 수사를 받고 있다. 상상인저축은행도 합수단이 직접 수사했던 리드에 부당 주식담보대출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증권범죄 민생 직결되는데…법무부, 관련 기관 협의 건너 뛰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직접 수사를 줄이고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법무부가 경제범죄를 수사하는 합수단 폐지를 졸속으로 결정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주가 조작같은 범죄는 다수의 투자자 피해를 동반한다. 이렇듯 민생과 직결하는 증권범죄 수사기구를 없애면서, 신중한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합수단과 가장 많은 협업을 하는 기관은 수사 전 단계 '조사'를 책임지는 금융위(자본시장조사단)와 금감원(자본시장조사국)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합수단을 폐지하면서 이 두 기관과 업무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무부 직제 개편 과정에서 부처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법무부에 합수단 폐지에 관해 부처의견을 전달한 것도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15일 뒤늦게 검찰에 '직제 개편안에 관한 부처의견'을 물었다고 한다. 앞서 법무부가 직제 개편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정책이 미칠 여파나 영향에 관해 관련 기관 견해를 듣는 최소한의 과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전문가들 "특수범죄 수사 역량·노하우 줄어들 것…대안 필요"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범죄는 특수범죄다. 이런 특수범죄를 수년간 다뤄온 수사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합수단 소속 검사와 파견 직원들이 쌓아온 수사 경험이나 노하우가 일선 수사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합수단이 수사 중인 사건은 폐지 후 금융조사(1·2)부로 배당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여의도 작전세력이 느끼는 합수단의 무게감은 그야말로 상당하다. 그들은 소속 검사뿐 아니라 파견 직원들까지 조사하면서 수사에 대비한다"며 "합수단을 폐지한다면 이에 대한 대안도 함께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최근 성명에서 "합수단 폐지로 신라젠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특히 비직제 부서였던 합수단은 직제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