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의 연주 모습은 마치 전쟁터 영웅이나 신화 속 여전사를 떠올리게 했으며 웅장하고 윤택한 톤은 압도적이었다. 물론 지금도 역시 활을 휘두르거나 몸을 뒤로 젖힌 채 활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특유의 연주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음악 작품에 대한 해석은 한결 온화하고 서정적으로 변모했다.
지난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사라 장은 음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아름다운 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때로는 템포를 살짝 밀고 당기며 선율의 맛을 만들어낸 연주로 갈채를 받았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는 때때로 중세 음유시인이 부르는 달콤한 노래처럼 들렸다.
아마도 10여 년 전 여전사와 같은 연주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온화하고 부드러운 연주에 잠시 당황했을 수도 있다. 리사이틀 첫 곡으로 연주한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민속 무곡은 도입부에서부터 그리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과장된 어조나 과시하는 듯한 제스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한 소리를 내야 할 부분에서도 지나친 악센트를 자제하는 듯했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매우 격정적인 2악장에서도 격하지 않았고 심지어 빠르고 화려한 바이올린 소품을 연주할 때도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 좋은 바치니 '고블린의 춤(요정의 론도)' 연주는 매우 독특했다. 처음부터 템포는 상당히 느려서 매우 낯설게 들렸지만, 차츰 활털이 튀어 오르는 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그의 색다른 연주에서 새로운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대구와 울산을 비롯한 전국 투어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때문인지, 사라 장의 바이올린 연주에선 약간의 피로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손가락에 문제가 있었는지, 바치니 곡에서 왼손으로 줄을 튕기는 주법을 구사하는 부분에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고 때때로 음정이 불안정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사라 장은 본인 컨디션과 관계없이 언제나 관객들에게 최선의 무대를 선사하기 위한 프로 음악가의 모습으로 이번 리사이틀 내내 뜨거운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공연 전·후반 연주곡목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무대 의상과 관객을 향한 정중하고 우아한 인사, 악장 사이에 터져 나온 박수에도 환한 미소로 답하는 무대 매너로 프로 연주자 품위를 드러냈다. 또한 마지막 곡으로 선보인 라벨의 '치간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로 박수갈채를 받은 그는 탱고와 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을 비롯한 4곡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환호에 답했다.
사라 장이 선보인 성의 있는 리사이틀 무대에 감동한 청중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앙코르를 4곡이나 연주한 후에도 박수와 환호가 그치지 않자 사라 장은 몇 번이고 무대로 나와 환호에 답해야 했다.
이번 무대를 통해 사라 장은 여전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