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북한의 최근 잇단 ‘중대한 시험’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연내 도발보다는 내년 미국 대선 국면을 이용한 점진적 위기 조성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13일 밤 10시 41분부터 약 7분간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시험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또다시 진행했다고 국방과학원 대변인이 발표했다. 지난 7일 같은 장소에서 ‘대단히 중대한 시험’을 실시했다고 밝힌 지 엿새 만이다.
북한은 이어 14일에는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이런 사실을 언급하며 “힘의 균형이 철저히 보장되여야 진정한 평화를 지키고 우리의 발전과 앞날을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거대한 힘을 비축하였다”고 밝혔다.
이날 담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열쇠 말은 ‘힘의 균형’ ‘진정한 평화’ ‘거대한 힘’이다. 북한의 기존 언술과도 다소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전략노선과 관련해 북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다 분명해졌다.
북한은 최근 두 차례 중대한 시험이 자신의 전략적 지위를 변화시키고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핵무장을 선언한 북한이 ‘전략적 지위’를 변화하고 억제력을 더욱 높인다는 것은 단순한 핵보유 차원을 넘어 핵강국을 지향함을 의미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은 국방과학원과 총참모장 담화를 통해 새로운 길이 핵능력 고도화임을 분명히 하고있다”며 “비핵 평화를 통한 경제발전이 아니라 핵의 균형을 통한 평화론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이미 ‘거대한 힘’을 비축했다고 밝힌 부분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등에 따른 후과를 미국에 알리는 측면이 강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제재에 약점을 드러낸 것으로 보고 ‘No Hurry’(서두르지 않겠다)를 외치며 협상판을 깼고 시간 끌기로 일관했다.
하지만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해 어찌됐든 버텨내고 있고, 오히려 미국에 보란 듯이 재래식 전력은 물론 핵 능력까지 고도화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마치 영변시설 폐기 같은 ‘주동적 조치’에 값을 제대로 쳐주기는커녕 사실상 무장해제를 강요해온 미국에 대한 앙갚음처럼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하노이 회담 결렬 뒤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제안에 대해 미국 측이 이번에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나 같다”며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다시 미국 측에 차려지겠는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담화를 통해) 그동안의 북미대화가 과연 북한과 미국 중 어느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는지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달 하순 당 중앙위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협상 종료와 핵·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재개 결정을 하고 신년사에서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앞으로 동창리 시험장 가동을 통한 미사일의 질적 향상, 영변 핵시설을 통한 핵탄두 수량 증가 등 핵무력의 질량적 증가를 도모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최근 북한의 잇단 ‘말 폭탄’과 ‘중대한 시험’으로 고조됐던 북미 간 충돌 위기는 일단 한 고비 넘긴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된다.
북한은 14일 박정천 총참모장 담화에서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뒤집어 해석하면 미국 등의 태도 여하에 따라 굳이 연내에는 ICBM 등을 발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북한은 지난 3일 리태성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이름의 도발을 경고했지만 이 역시 미국의 선택과 결심을 조건으로 달았다.
북한이 ‘중대한 시험’을 엿새 간격으로 잇달아 실시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일각에선 1차 엔진시험 후 조만간 실제 발사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전망과 달리 2차 시험이 진행됐다. 추가 시험 가능성도 남아있는 셈이다.
북한으로서도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카드를 한꺼번에 내놓기 보다는 ‘살라미’식으로 잘게 나눠 쓰는 편이 유리하다.
내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와 한국 4월 총선 등의 일정을 고려하며 최적의 타이밍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북한이 ‘새로운 길’을 걷더라도 대화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지는 않겠지만 협상 조건은 그만큼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