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여정에서는 북한의 원망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공조를 단 한 차례도 흔들지 않았지만,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놓고는 미국과의 이견 표출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 한미, 서로 다른 관점으로 지소미아 가치 판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소미아는 한일 양국 간에 풀어야 할 상황이고, 한미동맹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일본이 먼저 안보 협력 상 우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러한 상황에서 군사 비밀을 공유하는 지소미아를 유지할 이유가 없기에 한일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있다. 또한 한미일 3국의 삼각정보공유약정(Trilateral Information Sharing Arrangement·티사)이 있기 때문에 일본과 충분히 군사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일관계가 정상화만 된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지소미아 연장을 다시 검토할 용의가 있다"는 원칙을 앞세우며 동조하지 않는 상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북한의 원성을 살 정도로 미국과 일치된 목소리를 내던 정부가 지소미아에 있어서는 우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인 이견 표출은 우리 정부와 미국이 지소미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소미아에 대해 3년간 일본과 교환한 대북 정보의 질과 일본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따졌지만, 미국은 지소미아를 자신들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하고 대(對) 중국 견제 수준을 높이는 포석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규칙에 기반한 지역 질서(rule-based order)를 위협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동맹국들과 함께 책임을 분담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미국 주요 당국자들의 발언은 이같은 판단에 기인한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박원곤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다른 국가보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경제적으로도 나은 한국과 일본을 핵심국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지소미아를 폐기한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 자신들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지 않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대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우리의 신남방정책의 접점을 중국의 일대일로와는 우리의 신북방정책의 접점을 찾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에 충돌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많다고 본다. 그것을 잘 활용하면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전략에 맹목적으로 동조하기보다는 우리도 국익을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미국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또 다른 핵심 축인 호주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호주는 역내 질서 유지나 안보 협력보다는 인도·태평양이라는 큰 틀 속에 포함돼 경제 등 새로운 협력의 판을 짜는 데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물론, 미국과 다른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표출되며 한미 동맹이 균열되고 결국 최대 현안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진전에도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드 배치라는 극한 대립에도 한중 관계가 파국을 맞지 않은 것처럼 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싼 이견이 한미 동맹 자체를 흔들지는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한미가 각 이슈에 따라 때때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미 동맹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한미는 지소미아 논란과는 별개로 방위비분담금에 있어 커다란 이견이 있고 자동차 관세 부과 등 통상 이슈도 우려가 크지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일치된 입장을 갖고 있고 마국산 무기 도입 계획도 확대되는 등 매번 주요 사안들이 얽혀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미동맹은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정부의 의무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나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일본에게 과거와 현재는 분리해서 보자고 말하듯 한미가 다루는 여러 사안들을 분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