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상금으로 산 땅에 철탑 서자 부자(父子)는 세상을 등졌다

철탑 탓 은행서 담보잡힌 땅값 반토막되자 극단적 선택
30년째 철탑 박혀도 사용료 0원·보상금 60만원이 전부 …한전, 일시불 보상금에 "법적 문제 없다"
7~8억 사비 들여 철탑 이전 공사하는 민원인도

그 논은 아버지 몸값이었다.

공장에서 다친 몸으로 농사라도 지어보겠다며 산재 보상금으로 산 땅이었다.

처음 짓는 농사는 서툴렀고 들어갈 돈은 많았다. 농기계를 빌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아버지는 논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농기계도 사고 농사도 제대로 지어보자 하던 순간이었다.

날벼락이 떨어졌다. 2012년 아버지 논 바로 옆으로 100m 가까이 되는 거대한 철탑이 세워졌다.

땅값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논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았는데 가격이 반토막나면서 재산을 모두 날린 셈이 됐다.

고향인 군산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던 아버지는 자책하다 결국 철탑이 세워진 그 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장남이 세상을 떠나자 자식의 고통을 그대로 끌어안은 할아버지도 6개월 뒤에 아버지를 따라 숨졌다.

철탑으로 인한 비극이 우리집을 덮쳤지만 아버지 무덤같은 논 위 철탑은 아직까지 그대로 서 있다.


한전에서 정한 재산 보상지역인 3미터 안에 들지 못해 송전선이 논 바로 옆으로 지나갔지만 아버지는 보상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참다못한 어머니가 송전탑설치 반대 모임을 찾아 사연을 털어놨다. 하지만 한전측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들 가족의 사연을 한전측과 협의한 새만금송전탑 주민대책위 강경식 간사는 "당시는 송전선 좌우 13미터로 법이 개정되기 전이어서 지원금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한전은 법에 걸리는 게 없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전국의 송전탑은 모두 4만 2000여개. 한국전력은 전력 공급 수송을 위해 철탑이 세워지는 토지에는 '지상권'을, 고압선이 지나가는 아래의 토지인 선하지에는 '구분지상권'을 설정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상 지역에 포함돼 보상금을 받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한전측이 철탑을 세울 때 지급하는 사용료는 단 한 번뿐이다. 영구사용료인 셈이다.

9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실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지상권 설정 계약서'를 살펴보면, 김모씨는 지난 1982년 8월 14일 김씨의 논에 철탑을 세우는 대가로 한전으로부터 보상금 63만 4000원을 받은 게 전부였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김씨가 사망한 뒤 현재는 그의 아들이 철탑 옆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81년 3월 정모씨도 전남 장성군 황룡면 땅 일부를 한전측에 지상권으로 넘겨주고 35만원을 받았다.
(자료 제공=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실)


한전측은 "철탑의 경우는 설비 존속시까지 지상권이 유지된다"며 "지상권 보상 비용은 감정평가로 비용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지상권의 경우, 매매가보다 10~20% 높게 책정되며 송전선만 지나가는 구분지상권의 경우는 매매가의 30%가 보상금으로 지급된다.

토지주들은 몇십년 동안 유지되는 송전탑 사용료를 단 한 번 지급하는 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자신의 논에 송전탑이 세워져 있는 군산의 김모(45)씨는 "농기계를 사려고 대출 상담을 받아보니 원래는 논을 담보로 80%까지 대출이 나오는데 지상권이 설정돼 있는 논은 20~30%밖에 대출이 안 나온다더라"며 "다른 방법으로 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철탑이 있다보니 농작업을 할 때 기계에 걸려서 불편하다"며 "땅이 잘 팔리지도 않고 건물을 지으려고 해도 3층 이상은 한전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철탑 밑에서 8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정모(50)씨도 "전자파 측정 기계를 가지고 와서 철탑 밑에서 측정을 해본 적이 있는데 수치가 너무 높아 측정이 안 될 정도였다"며 "철탑 때문에 땅값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전자파 위험도 있는 상황에서 한전의 보상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전에 송전선을 이전해 달라는 요청도 가능하지만 전기사업법 72조에 따라 민원인이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일부 토지주는 실제로 사비를 들여 철탑 이설 공사를 진행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지난 2016년 손모씨는 자신의 돈 6억 7000만원을 들여 154kV 건천-천북 송전선로를 이설했다.

또 장모씨 역시 올해 154kV 북대구-관음 송전선로 이설에 자신의 돈 8억을 내고 공사를 완료했다.
(자료 제공=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실)


홍의락 의원은 "지상권과 소유권 중 등기부상 지상권이 우위에 있다보니 토지주는 땅을 팔지도 못 하고 전 주인이 보상금을 받으면 법적으로 새 주인은 못 받는 상황"이라며 "자유시장경제에서 사유재산에 너무 가혹한 제재"라고 꼬집었다.

홍 의원은 "민법, 전기 사업법에 문제가 없다고는 해도 40년 동안 땅을 쓰면서 50만원 주는 건 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며 "한전 차원의 실질적인 보상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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