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논의 '패싱' 당한 경찰…"법무부 일방통행에 당황"

수개월 동안 경찰 '논의 요청' 침묵하던 법무부
조국 장관 취임하자마자 '피의사실 공표' 제한 일방 추진
경찰 내부 '부글'…"사회적 논의 거쳐야 할 사안인데, 의도에 물음표"

경찰청 (사진=연합뉴스)
'조국 법무부'가 피의자의 피의사실 공개를 원칙적으로 막는 방안을 추진하자 경찰 내부에서도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이 수개월 째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논의하자'고 법무부에 요청했던 사안인데, 조국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어떤 협의도 없이 강행하려는 의도가 뭐냐는 물음표까지 제기된다.

최근 법무부는 피의사실 언론 공표 제한 방안을 담은 훈령 초안을 마련했으며, 조만간 당정 협의를 통해 추진 계획을 구체화할 것으로 파악됐다. 공개된 초안을 보면, 기소 전까지 피의자의 혐의 사실과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이를 어긴 검사는 감찰을 받게 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해당 훈령은 검찰에 대한 규정으로, 경찰에게 직접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상식적으로 피의사실 공표 기준이 수사기관별로 다를 수는 없다는 점에서 법무부의 이번 안은 경찰에도 언론대응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경찰에서는 이런 '수사기관 공통 사안'과 관련, 법무부가 어떤 협의도 없이 규정을 마련하고 이를 밀어붙이려는 데 대해 "당황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경찰은 울산지검의 '경찰 피의사실 공표' 수사를 계기로 법무부에 관련 기준을 함께 고민해보자고 수차례 요청해왔던 터라 이번 '협의 패싱'을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경찰청은 지난 2개월여 동안 법무부에 두 차례 협의 공문을 보내고, 여러 번 물밑에서 입장을 타진했지만 이달 초까지도 "외부기관과 협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답변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찰 간부는 "법무부가 새 훈령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경찰에 공식적으로 협의요청이 온 것도 없다"며 "추후에 법무부가 어떤 추진 로드맵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전해들은 게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는 입장이다. 충분한 소통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 핵심 관계자는 "수차례 협의를 요청했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진의가 뭔지 궁금하다"며 "웃기는 일"이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국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속전속결로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추진하는 데에는 결국 검찰의 '조국 수사' 통제 의도가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각으로도 읽힌다.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훈령을 바꿀 게 아니라,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 피의사실공표법(형법 126조)을 개정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피의사실 공표를 틀어막을 경우, 순기능도 있지만 언론의 권력형 비리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는 역효과도 예상되는 만큼 법에 처벌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등 보다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수사기관, 언론, 사건 관계자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며 "모두가 만족할 수 없다면 적어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입법을 통해 해결하는 게 옳다는 의견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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