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용마 MBC 기자의 책 제목이기도 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뜻을 기리며, 그의 뜻을 이어나가겠다는 이들의 애도와 다짐 속에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엄수됐다.
고(故)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례위원회는 이용마 기자를 추모하는 시민사회장 영결식을 이날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진행했다.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과 시민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한동수 MBC 기자는 이용마 기자의 약력을 이야기하며 "이용마 기자는 불화와 갈등을 회피하지 않았다. 권력을 감시하는 보도에 집중했으며, 그런 태도와 자세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용마 기자는 1996년 MBC에 기자로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치며 권력과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2012년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 홍보국장으로서 공정방송 회복과 MBC를 국민으로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17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 이로 인해 당시 최승호 PD(현 MBC 사장) 등 5명과 함께 해고됐다.
이 기자는 해고되고서도, 해고 후 복막암 판정을 받고서도 언론노동자로서 부당해고와 불공정방송을 이끄는 권력에 맞서 투쟁을 이어나갔다. 투쟁의 결과로 방송사의 공정방송 의무가 방송·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며, 이를 위한 파업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용마 기자는 그간의 투쟁의 시간을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안종필 자유언론상 특별상과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한동수 기자는 "2017년 12월, 단 한 순간도 의심치 않았던 복직을 하고 상암동 새 사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출근하던 날 이용마 기자는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국민을 잊지 말자고, 억울한 소수의 편에 서자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부디 한 번만 '용마야'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해주길 바란다"라며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 소망은 그대의 것만이 아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고, 이제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을 거쳐서 마침내 세상은 바뀌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나는 당신의 영혼을 가슴에 묻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대의 영혼을 가슴에 심을 것입니다. 그 씨앗을 살려 내고 온 천지에 날려 보낼 것이다. 가꾸고 꽃을 피워내 열매를 이루고, 그리해 모든 생명에게 그 씨앗을 나눌 것"이라며 "그대의 안식을 빌기 이전에 그대의 다짐을 나의 다짐, 우리의 다짐으로 바꾸어 나가기를 다시 한번 거듭 다짐하고자 한다. 그것이 진정, 그대의 안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함께하며 해고됐던 동지이기도 한 최승호 MBC 사장은 "기자로서 이용마 씨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그 세상을 이룰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외에서 자행되는 외압,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다. 그래서 이용마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하고, 누구도 선뜻 가려 하지 않는 노조 집행부의 길을 걸었다"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2012년 170일 파업, 참 징글징글하게 긴 싸움이었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그때 노조 홍보국장이었습니다. 당시 노조가 내걸었던 구호인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용마 국장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맹렬한 운동가였고, 지략가였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인인 국민의 눈치만 보자,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MBC가 되자는 슬로건 하나로 시민과 손잡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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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싸움의 의미가 뭐냐는 물음에 그는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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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마 기자가 훤칠한 모습으로 MBC에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방송될 때, 시민들은 다시 MBC가 돌아왔다고 느끼지 않을까 꿈을 꿨습니다. 그와 나의 간절한 꿈이 기적처럼 그의 몸을 살리고 MBC를 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났습니다. 우리는 남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더 좋은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용마 씨,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자네의 뜻,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게. 자네는 이제 근심, 걱정은 놓고 부디 편히 쉬게나." (최승호 MBC 사장)
영결식에 참석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한 조합원을 오늘 하늘로 보내드린다.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낙관했던 이용마 조합원을 비통한 심정으로 보내드린다"라며 "오늘 이 슬픔은 그와 우리 언론노조 구성원들이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지난 역사와 함께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라고 애통함을 드러냈다.
오 위원장은 "이용마 기자가 꿈꿔온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손 내밀기 위해, 우리는 그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접고 낙관적 사고로 그가 남긴 유지를 받들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보장할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자본과 정치 권력이 손대지 못할 언론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좌절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 더는 탄압받지 않고, 병마에 시달리지 않고, 공정성 시비도 없는 그런 언론을 만들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제 막 기자 생활 첫발을 뗀 후배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해주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모양"이라며 "무엇보다 그 후배에게서 23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김효엽 기자는 이용마 기자를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자신보다 늘 젊고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취재를 할 때도, 노조 활동을 할 때도,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을 나설 때도, 해직된 뒤에도, 심지어 몹쓸 병을 얻어 병마와 싸울 때도 늘 한결같았다"라며 "많은 사람이 세상은 바꿀 수 없다며 나를 바꾸기 시작했지만, 용마 형은 그렇지 않았다. 왜 안 되냐고, 왜 침묵하냐고 끊임없이 대들고 고꾸라지고 다시 일어섰다"라고 말했다.
김효엽 기자는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형이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형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한 이 한마디였을 것"이라며 "사람을 좋아했고, 우리의 공동체를 사랑했고, 우리의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기자는 "목표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그래서 한 걸음씩이라도 걸어가는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형이 우리 모두에게 나눠주고, 조금 먼저 떠났을 뿐"이라며 "우리도 통 크게, 피하지 않고, 또 웃으며 함께 손잡고 가겠다. 지켜봐 달라"라고 말했다.
이날 고인을 실은 운구 행렬은 장지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메모리얼 파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