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마 기자 영결식 수놓은 다짐…"세상은 바꿀 수 있다"

[현장] 故 이용마 MBC 기자 영결식
선후배·동료들, 이용마 기자가 염원했던 공정방송 위한 길 걷겠다 다짐
"이용마의 꿈, 피하지 않고 이어가겠다"

23일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열린 고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고인의 영정이 옮겨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형이 떠나면서 남은 우리는 형에게 모두 빚을 졌다고 여겼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빚을 진 게 아니라 형의 꿈을 조금씩 나눠 갖게 된 것입니다. 부자가 됐습니다. 목표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그래서 한 걸음씩이라도 걸어가는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형이 우리 모두에게 나눠주고, 조금 먼저 떠났을 뿐입니다. 아마도 용마 형은 옮겨간 저세상에서도 혹시 부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살뜰히 챙기고, 또 답을 찾을 거 같습니다. 맞습니다. 슬퍼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건 적어도 이용마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통 크게, 피하지 않고, 또 웃으며 함께 손잡고 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하나만 더, 그곳에서는 이제 아프지 말고, 편안하시길 빌고 또 빌겠습니다." (김효엽 MBC 기자)

고(故) 이용마 MBC 기자의 책 제목이기도 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뜻을 기리며, 그의 뜻을 이어나가겠다는 이들의 애도와 다짐 속에 이용마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엄수됐다.

고(故)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례위원회는 이용마 기자를 추모하는 시민사회장 영결식을 이날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 광장에서 진행했다.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과 시민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23일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열린 고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고인의 위패와 영정이 옮겨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선·후배 동료들 "이용마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을 잊지 말자고 말했던 사람"

한동수 MBC 기자는 이용마 기자의 약력을 이야기하며 "이용마 기자는 불화와 갈등을 회피하지 않았다. 권력을 감시하는 보도에 집중했으며, 그런 태도와 자세는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용마 기자는 1996년 MBC에 기자로 입사해 보도국 사회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치며 권력과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2012년에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 홍보국장으로서 공정방송 회복과 MBC를 국민으로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17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 이로 인해 당시 최승호 PD(현 MBC 사장) 등 5명과 함께 해고됐다.


이 기자는 해고되고서도, 해고 후 복막암 판정을 받고서도 언론노동자로서 부당해고와 불공정방송을 이끄는 권력에 맞서 투쟁을 이어나갔다. 투쟁의 결과로 방송사의 공정방송 의무가 방송·언론노동자의 근로조건에 해당하며, 이를 위한 파업은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용마 기자는 그간의 투쟁의 시간을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안종필 자유언론상 특별상과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한동수 기자는 "2017년 12월, 단 한 순간도 의심치 않았던 복직을 하고 상암동 새 사옥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출근하던 날 이용마 기자는 엄동설한에 촛불을 든 국민을 잊지 말자고, 억울한 소수의 편에 서자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열린 고 이용마 MBC 기자 시민사회장에서 최승호 MBC 사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용마 기자가 존경하는 언론계 원로인 김중배 뉴스타파 99%위원회 위원장은 잠시간 말을 잇지 못하더니 "용마여"라고 그를 불렀다.

김 위원장은 "부디 한 번만 '용마야'라고 부르는 것을 허락해주길 바란다"라며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그 소망은 그대의 것만이 아니다. 세상은 바꿀 수 있고, 이제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 그것을 거쳐서 마침내 세상은 바뀌겠습니다 말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나는 당신의 영혼을 가슴에 묻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대의 영혼을 가슴에 심을 것입니다. 그 씨앗을 살려 내고 온 천지에 날려 보낼 것이다. 가꾸고 꽃을 피워내 열매를 이루고, 그리해 모든 생명에게 그 씨앗을 나눌 것"이라며 "그대의 안식을 빌기 이전에 그대의 다짐을 나의 다짐, 우리의 다짐으로 바꾸어 나가기를 다시 한번 거듭 다짐하고자 한다. 그것이 진정, 그대의 안식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2년 파업 당시 해직된 이용마 기자가 2017년 12월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 MBC에서 복직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 공정방송 투쟁 동지였던 최승호 사장 "자네의 뜻,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게"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을 함께하며 해고됐던 동지이기도 한 최승호 MBC 사장은 "기자로서 이용마 씨의 화두는 정의로운 세상이었다. 그 세상을 이룰 보도를 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외에서 자행되는 외압,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져야 했다. 그래서 이용마의 또 다른 화두는 언론개혁일 수밖에 없었다"라며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하고, 누구도 선뜻 가려 하지 않는 노조 집행부의 길을 걸었다"라고 고인을 기억했다.

"2012년 170일 파업, 참 징글징글하게 긴 싸움이었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그때 노조 홍보국장이었습니다. 당시 노조가 내걸었던 구호인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용마 국장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맹렬한 운동가였고, 지략가였습니다. 공영방송 MBC의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인인 국민의 눈치만 보자,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MBC가 되자는 슬로건 하나로 시민과 손잡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중략)
우리 싸움의 의미가 뭐냐는 물음에 그는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중략)
이용마 기자가 훤칠한 모습으로 MBC에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방송될 때, 시민들은 다시 MBC가 돌아왔다고 느끼지 않을까 꿈을 꿨습니다. 그와 나의 간절한 꿈이 기적처럼 그의 몸을 살리고 MBC를 살리는 꿈을 꿨습니다. 그러나 그는 떠났습니다. 우리는 남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었습니다. 시민 여러분, 더 좋은 방송을 만들겠습니다. 용마 씨,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자네의 뜻,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게. 자네는 이제 근심, 걱정은 놓고 부디 편히 쉬게나." (최승호 MBC 사장)

MBC 김재철 사장과 노동조합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2년 3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정영하 노조위원장(왼쪽)과 이용마 홍보국장이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 2탄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 "우리는 이용마의 꿈을 나눠 가졌다…우리도 피하지 않고 가겠다"

영결식에 참석한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한 조합원을 오늘 하늘로 보내드린다. 절망과 어둠의 시대에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고 낙관했던 이용마 조합원을 비통한 심정으로 보내드린다"라며 "오늘 이 슬픔은 그와 우리 언론노조 구성원들이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던 지난 역사와 함께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라고 애통함을 드러냈다.

오 위원장은 "이용마 기자가 꿈꿔온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손 내밀기 위해, 우리는 그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접고 낙관적 사고로 그가 남긴 유지를 받들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보장할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자본과 정치 권력이 손대지 못할 언론 공정성을 확립하기 위해 좌절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겠다. 더는 탄압받지 않고, 병마에 시달리지 않고, 공정성 시비도 없는 그런 언론을 만들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고(故) 이용마 MBC 기자의 영결식이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 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유가족들이 이 기자의 영정을 들고 보도국을 돌고 있다. (사진=MBC 제공)
이용마 기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인 김효엽 MBC 기자는 "3월이었다. 병문안을 위해 집에 찾아간 날, 저 멀리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용마 형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안부만 묻고 서둘러 나올 생각이었다"라며 "그런데 함께 간 막내 후배 기자의 모습을 보는 용마 형의 눈이 반짝였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몸을 일으켜 세웠고, 결국 그날 우리는 2시간 넘게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라고 그를 기억했다.

김 기자는 "이제 막 기자 생활 첫발을 뗀 후배가 반가웠던 모양이다. 해주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모양"이라며 "무엇보다 그 후배에게서 23년 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김효엽 기자는 이용마 기자를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자신보다 늘 젊고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취재를 할 때도, 노조 활동을 할 때도,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을 나설 때도, 해직된 뒤에도, 심지어 몹쓸 병을 얻어 병마와 싸울 때도 늘 한결같았다"라며 "많은 사람이 세상은 바꿀 수 없다며 나를 바꾸기 시작했지만, 용마 형은 그렇지 않았다. 왜 안 되냐고, 왜 침묵하냐고 끊임없이 대들고 고꾸라지고 다시 일어섰다"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고 이용마 MBC 기자의 시민사회장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우리가 기자라는 직업을 달고 MBC에 출근을 시작한 건 1996년 12월 1일이었습니다. 용마 형은 늘 통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단신 기사 한두 줄에 머리를 싸매던 와중에도, 그날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면서 마치 우리가 쓴 기사가 방송된 것처럼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며 킬킬 대던 와중에도 용마 형은 늘 큰 원칙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회부 막내 시절 어느 날 형은 이런 말을 했지요. 높은 자리에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기자를 무서워한다. 감출 게 많아서다. 하지만 시민들은 기자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많은 기자가 힘 있는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고, 시민들을 가르치려 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민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그들을 대신해 힘 있는 자들에게 당당히 질문하고 답을 받아내는 거라고 했습니다. 네, 형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날 형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용마 형은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적당히 피하고 살아왔다면 지금의 이용마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김효엽 MBC 기자)

김효엽 기자는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형이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형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한 이 한마디였을 것"이라며 "사람을 좋아했고, 우리의 공동체를 사랑했고, 우리의 세상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기자는 "목표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그래서 한 걸음씩이라도 걸어가는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형이 우리 모두에게 나눠주고, 조금 먼저 떠났을 뿐"이라며 "우리도 통 크게, 피하지 않고, 또 웃으며 함께 손잡고 가겠다. 지켜봐 달라"라고 말했다.

23일 서울 상암동 MBC광장에서 고 이용마 MBC 기자의 시민사회장이 열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마지막으로 이용마 기자의 아내이자 이 기자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아내 김수영 씨는 "착하게 자다가 편하게 가셨다. 여러분들 걱정하실까 봐 먼저 말씀드린다"라고 전한 뒤 "암이 동면해주길 바랐고, 암이 더 자라지 못하도록 잘 다스리자고 준비했었다. 세상에 있는 암들도 사실 함께 같이 가야 한다. 암은 없앨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다스려서 더 크지 않게 우리가 면역력을 잘 길렀으면 좋겠다. 그게 이용마 기자가 남기고 간 메시지 같다. 그게 잘 전달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고인을 실은 운구 행렬은 장지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메모리얼 파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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