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배우들이 역할 제안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면서 입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 조여정 역시 제작보고회 때 "어떤 작품이어도 하겠다, 아주 작은 역할이어도 하겠다고 했는데 역할이 생각보다 좀 컸다. 아주 작아도 하려고 했는데 조금 (역할이) 크더라. 더없이 행복하게 작업했다"고 말한 바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영화를 공개했던 지난달 28일 언론·배급 시사회 때도, 조여정은 '기생충'의 일원으로 함께 작업했다는 것이 영광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만큼 하고 싶었고, 특별히 더 잘 해내고 싶었다.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처음으로 레드카펫을 밟은 조여정을,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칸에 다녀온 것,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 모두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진짜 영광"이라고 밝혔다.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고 나서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보았을 때, "영화라는 건 신기하다. 언어가 달라도 이렇게 이야기만으로 공감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그에게 '기생충'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기생충'으로 처음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칸영화제 간 것 자체도 당연히 좋지만, (봉준호) 감독님 작품으로, 좋은 작품으로 영화제에 와서 그게 좋았다. 사실 여행을 가도 누구랑 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이렇게 좋은 작품으로 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더라.
▶ '기생충'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소감은.
저도 참여한 배우로서 이렇게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에 그 영화에 출연했다는 건, 진짜 영광이다. 굉장한 운이었던 것 같다.
그때 이제 막 영화 끝나고 박수 쳐 주실 때, 각자 치다가 다 같이 치는 박수가 있지 않았나. 그런 순간! 진짜 한 마음으로 영화를 봤구나, 나라를 떠나서 똑같이 느꼈구나, 이 영화에 대해서. 그게 되게 좋더라. 참, 영화라는 건 신기하다. 언어가 달라도 이렇게 이야기만으로 공감할 수 있구나, 말 그대로 영화 한 편으로 다 되는구나 싶어서.
▶ 영화 완성본을 본 첫 느낌도 알고 싶다.
이런 주제, 이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영화로 전달하는 감독님이 너무 놀라웠다. 제가 첫 시사 보고 나서 감독님 서 계시는데 뭐라고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너무 좋은데… 첫 마디가 "감독님, 놀라워요!"였다. (웃음) 그 말밖에 안 나왔던 것 같다. 너무 무겁지 않고 유쾌한 듯하지만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많은 영화여서 놀라웠다.
▶ 영화에 합류하게 된 이야기를 해 보자. 봉준호 감독은 "연교 역의 조여정 배우는 아마 엄청나게 깊은 다이아몬드 광산인데 아직 아무도 모르는 듯해서 그 일부라도 채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거 어디 쓰여 있는 건가? (홍보팀을 바라보며) 저건(자료집은) 저한테는 안 주는 건가? (* 기자 주 : 조여정은 자료집을 받고 그 문장이 어디에 쓰여 있는지 확인한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주 자세하게 얘기하진 않으셨지만, '두 아이의 엄마 역인데 괜찮냐'고 처음에 물어보셨다. 처음 미팅할 때 감독님이 어떤 걸 물어보실까 엄청 궁금했다. 어떻게 절 캐스팅했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이 엄마 역이라 괜찮냐고 물으신 거다. '그게 진짜 물어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하니 '네'라고 하셨다. 아니, 당연히 괜찮았다. (웃음)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만나다니? (웃음) 그게 감독님의 배려다. 배우에 대한 배려. 혹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아무 문제 없다고, 너무 좋다고 했다. 어디서 뭘 봤는데 그런 느낌을 받으셨다고 한다. 제가 많이 보여온 모습과 이외에 좀 다른. (웃음) 그 표현이 생각이 안 난다. 아! "맞아요, 저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감독님" 이랬다. "우리 영화 되게 이상해요, 이상한 이야기에요"라고 하셔서 제가 막 웃으면서 "저 이상한 거 너무 좋아해요" 그랬더니 막 웃으시더라. 전 이상한 거 너무 좋아한다. 독특한 것.
그 작품이 사실은 그전 작품에서 안 꺼냈던 (제) 모습을 보여주는 시작이었던 것 같다. 뭔가 더 많이 막 이렇게 꺼내고 싶으셨나. (웃음) 아무튼 좋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보고 (캐스팅을) 생각하셨다고 하니까 너무 좋았다.
▶ 시나리오 읽었을 때부터 '이상한 영화'라는 감이 왔나.
처음에 읽는 순간부터, 그게 감독님 의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기우(최우식 분)의 영화 같았다. 그냥 기우한테 너무 몰입이 돼서 읽어가지고 마지막에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 처음 영화로 만들어져서 나왔는데 선배님들도 그렇고 최우식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마지막에는 많이 울었다.
▶ 봉 감독은 콘티를 철저하게 짜서 필요한 장면만 찍고 그것만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작업 방식을 낯설어하는 배우들도 있다던데, 어땠나.
편집 콘티가 다 있어서 마스터를 안 딴다. 이런 얘기를 배우들도 촬영하면서 할 것 아닌가. (웃음) 근데 전 몰랐다. 이거에 대해 놀라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나 보다. 세트 갔을 때 공간감 익히는 것도 그렇고, 영화 속 연교로 들어가야 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여유가 없었나 보다. (웃음)
▶ 그만큼 긴장을 많이 했다는 건가.
현장에 적응하느라고, 그 현장에 적응하느라 그랬다. 애들(다혜-다송 역)이랑 스킨십도 필요하고, 정서적으로도. 저도 모르게 그냥 그랬던 것 같다.
배우들이 그런 얘기 하니까 '콘티대로만 찍으시네? 역시 대단하시군!' 하고 전 다시 제 고민으로 돌아왔다. (웃음) 저 스스로 숙제가 너무 크니까. 감독님에 대한 그 작업방식에 대한 거는 뭐랄까 무한한 신뢰가 있었다. '나만 잘하면 돼' 하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숙제에 빠져 있었다.
▶ 연교의 어떤 부분이 가장 큰 숙제였는지 궁금하다.
연교의 상황 자체다. 아주 부유하다는 것. (웃음) 어떤 캐릭터를 하든 엄청 상상을 해야 하지만. 뭐랄까 아이들의 교육과 집안이 잘 돌아가게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고민이 없다는 것? 평생 안 해 본 고민이었다. 나 조여정은 다른 고민하면서 살았으니까. 남편(박사장) 비위 맞추고, 선균 오빠한테 집중하고 애들이 오면 집중하고 공간감 익히고. 그러느라 바빴다. 마음이 바빴다.
▶ 연교는 타인의 입에서 '심플한 성격'으로 표현된다. 성격이 심플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음… 전 진짜 심플하지 않은데, 음… 뭐지? 제가 20대인가 써 놓은 다이어리를 보니까, 제가 좀 불필요한 생각까지도 너무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더라. 잠들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 생각 저 생각 많았다, 불필요하게. 그럼 '이렇게 심플한 여자는 어떨까?' 했다. 처음 (연기)해 봤는데 귀여움이나 푼수 같은 면이 분명히 조여정 안에 있다. 근데 저는 연교처럼 심플하지는 못하다.
20대 때는 뭘 끼적끼적 써 놓지 않나. 예를 들면 Do the best! 뭐 이런 것. (웃음) 근데 다 보면 'Be Simple'이었던 거다. 심플했으면 좋겠는 거다, 제가. 연교는 그냥 이미 심플하니까 너무 새로웠다. 이면이 없달까.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 그대로 (그 이야기에) 집중해서 그대로 흡수하는. 이면이 없는 캐릭터를 되게 오랜만에 한 거다. '인간중독'만 하더라도 너무 서브 텍스트가 많았다. 최근에 제가 그런 캐릭터를 많이 했고. 이번에는 이면이 없는 너무 새로운 캐릭터를 하니까 재밌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