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인지 아니면 도사인지 나타나서 저한테 물어요. '세상을 바꾸었느냐.' 딱 듣고 보니까 대답할 수가 없어요. 잠 깨고 나서 생각해봐도 '세상을 바꾸었느냐',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과거를 고백하겠습니다. 때로는 그 사람이 한 일은 찬성할 수 없는 일도 있겠지만, 얼마나 진실하냐, 그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제 진실을 다해서 여러분들에게 제 과거를 고백하겠습니다. 사람은 참 편리해서 잘못된 것은 다 잊어버립니다. 절반만 듣는다 생각하시고요."(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육성으로 시작되는 '정치인 노무현'의 길과 '인간 노무현'의 삶에 대한 고백은 생전에 그랬듯이 솔직하고 간결하고 꾸밈이 없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꿔왔던 '노무현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완의 꿈을 꾸다 갔지만, 그의 기억과 바람과 꿈을 이어가는 시민들이 있기에 실패는 아닐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노무현의 시대'를 그려가는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에 들려온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되짚어 봤다.
오는 23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방송된 SBS 'SBS스페셜-노무현: 왜 나는 싸웠는가?' 편(2019년 5월 19일 방송)에서는 '노무현의 진짜 이야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방송의 내레이션은, '노무현의 이야기'의 내레이션은 노무현 대통령이 담당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목소리를 재구성해, 그의 생과 삶을 뒤돌아봤다.
이야기의 시작은 노무현 대통령 사후 자서전 '운명이다'의 에필로그 중 일부를 유시민 작가가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많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눈을 감고 그를 생각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는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 그는 왜 그렇게 떠난 것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도 아픈 것일까.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와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거치며 모두가 중년으로, 노년으로 늙어가는 동안 그는 홀로 그 뜨거웠던 6월의 기억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가슴에 품고 씩씩하게 살았다."
부마민주항쟁(1979년 10월), 부산지역 위수령 발령(1979년 10월 18일), 대통령 박정희 사망(1979년 10월 26일), 신군부 세력에 의한 쿠데타 발생(1979년 12월 12일), 5·18 광주민주항쟁(1980년 5월 18일) 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는 부채 의식과 죄책감, 부끄러움을 느끼던 변호사 노무현에게 '부림사건'은 '문제적인' 인권 변호사로 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부산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편과 저편을 가르지 않고, 누군가의 승리보다 원칙의 승리를 바랐던 노무현 대통령은 강한 이들에게는 강하게, 약한 이들에게는 약하게 다가갔다. 원리와 원칙을 중요시했던 그의 모습에 때로는 반발하고, 때로는 무시하기도 했다. '고졸' 출신 대통령에게 차기 대통령은 대졸 출신이어야 한다는 언론 보도와 주장도 나오기도 했다. 자신을 둘러싼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사람'을 외쳤다.
"나는 꼭 이깁니다. 꼭 이기는데, 많은 분이 '져도 좋다' 그 말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누구 사람한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낡은 정치와 싸우겠다. 정치를 바꾼다는 게 목표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원칙과 신뢰, 새로운 정치, 그것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여러분들이 시작하신 것입니다."(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새로운 정치를 꿈꾸며 시작했지만 그의 시도는 아직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 가운데 윤태영 전 노무현 대통령 부속실장의 수첩 속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뇌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윤태영 전 부속실장은 "'내가 옛날에는 분노 때문에 이걸, 정치를 시작했다'고 얘기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나를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일인데, 나는 지금은 대화와 타협 그 다음에 공존을 모색해야 되는 그런 대통령의 자리에 있다, 이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라고 노 전 대통령의 속내를 대신 토로했다.
미완의 혁명은 실패가 아닌 다음 시대와 사람들을 위한 시작이 되었듯, 노 전 대통령이 꿈꾸고 노력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져도 좋다'라고 했던 말처럼, '실패해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실패가 아니라 아직 오직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사람 사는 세상'은 반칙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고, 한 번 실패해도 또다시 일어날 수 있고, 성공한 사람도 부당한 특권을 누리지 않는 세상이다. 2019년의 현실을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 우리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기 위한 불편함들이 새어나오고 있다. 아직 과정의 길일지 모른다.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며 간다면, 이 진행형의 움직임을 이어간다면, 분명 '사람 사는 세상'은 오지 않을까.
"저는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습니다. 짧은 기간을 가지고 보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지만 멀리 내다보면 역사는 진보합니다. 이제 또 새로운 사람들이 나서서 세상을 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또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함께 노력해봅시다."(노무현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