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국가계약 '정부가 이럴 수 있나?'…'甲 대신 乙에 덤터기'

대형 건설사 도산하면 중소 공동도급사가 연대책임 뒤집어 써
경남기업 기업회생 신청, 지역 건설사가 대신 82억원 물어 줘
기획재정부 계약예규...'건설 연좌제' 강요하고 정부 책임 회피
지역 영세 건설업체 도산 방지를 위한 '특례조항' 시급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지방의 중소 건설업체인 A사는 지난 2015년 이후 악몽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남기업이 2015년 부도를 내고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경남기업이 남겨 놓은 공사비 80여억 원을 고스란히 덤터기 써서 대신 물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황당한 국가계약법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다. 1군 업체가 도산하면 공동도급사인 중소 건설업체가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조항이 바로 그것이다.

甲이 망하면 乙도 망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건설업계의 연좌제'가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 정부, 대한건설공제조합의 책임회피…영세 중소 건설업체에 떠넘겨

A사가 악몽을 겪게 된 발단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사는 1군 건설업체인 경남기업과 손잡고 충북 단양~가곡간 6.8㎞ 확포장 도로공사를 수주했다.

공사 지분은 경남기업이 88%를 갖고 A사가 7%, 또 다른 중소업체 B사가 5%를 갖는 조건이었다. 당시 낙찰가격은 699억 원이었다.

하지만 공사가 94%까지 진행되면서 실제 공사비는 882억 원까지 늘어났고, 결국 지난 2015년 3월에 남은 6%, 61억 원 상당의 공정을 끝내지 못하고 경남기업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게 됐다.

이에 당시 공동도급사인 A사는 남겨진 공정이 어려운 공사가 아닌 만큼 '책임시공'을 통해 자체적으로 마무리하겠다며 발주처인 대전지방국토청과 조달청에 제안했다.

하지만, 조달청은 A사가 입찰 당시에 기준 실적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개입찰을 통해 지난 2016년 1월에 제3의 건설업체에 남은 공정을 맡겼다.


이 과정에서 공사비는 당초 남은 61억 원에다 82억원이 추가가 돼 143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에 보증사인 대한건설공제조합은 61억 원은 어차피 정부가 지급해야하는 공사비이고, 공사 지연에 따른 추가비용 82억원은 A사와 또 다른 도급업체인 B사가 별도로 부담하라고 떠넘겼다.

A사 대표는 "경남기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인데, 경남기업은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고 책임을 묻지 않고, 애꿎은 영세 공동도급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는 황당한 상황이 됐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또, "처음부터 자신에게 공사를 맡겼다면 82억원의 추가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업체에 맡기면서 82억원을 추가 부담하도록 종용했다"며 "정부와 건설공제조합이 을(乙)의 눈물을 강요한 결과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 기획재정부 계약예규…악법 중에 악법으로 존재

이처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기획재정부 계약예규' 가운데 '공동운용요령' 항목이 발목을 잡았다.

이 항목은 계약이행요건을 갖추지 못한 구성원, 즉 중소 공동도급업체가 잔여 공사에 대한 권리는 없이 연대책임만 부담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 1군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면 중소 공동도급업체는 당초 자기 출자지분에 해당하는 계약 이행은 물론이고 연대책임에 의해 전체계약 금액까지 구상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건설업계 관계자는 "1군 건설업계가 망하면 관련된 중소 건설업체들도 연쇄적으로 망하라는 얘기와 다름이 없는 악법 중에 악법이다"며 "건설업계의 연좌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보증기관인 대한건설공제조합이 엄연히 수수료를 받고 보증을 서 줬는데 공제조합은 보증 책임을 지지 않고 힘없는 중소건설업체의 숨통을 죄서 자신은 빠져나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기획재정부는 이처럼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경남기업이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직전인 지난 2014년 1월에 '공동운용요령' 개정을 통해 (건설공제조합으로부터) 공사이행보증서가 발급된 경우에는 계약이행요건을 갖추지 못한 구성원은 연대책임을 배제하고 출자비율에 따라 책임을 부담하도록 변경했다.

그런데 문제는 개정된 예규항목이 2014년 1월 이후 입찰공고를 낸 정부발주 공사부터 적용한다는 것이다.

A사처럼 2004년에 공동 도급한 업체는 해당사항이 없고, 기존 예규에 따라 전체 연대책임을 져야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A사처럼 연대책임 피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소 건설업체가 전국에 1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연쇄 도산위기에 빠진 중소건설업체 살려야…'특례조항' 적용 절실
이에 이들 업체는 정부가 공동운용요령의 폐해를 인정한 만큼, 특례조항을 만들어 피해 업체를 구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지역경제 균형발전을 위해 해당 지역의 건설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경우 가점까지 부여하는 공사에 대해선 지역 업체를 위한 특혜조항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1군 건설업체가 부도(법정관리) 등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지분율 10% 미만의 지역 공동도급사에 대해선 시행일(2014년 1월) 이전에 발생한 연대보증채무도 각자의 지분율만큼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A사는 해당 공사의 추가발생 공사비 82억원 가운데 본래 지분율인 7%만 책임을 져, 5억7천여만 원을 부담하면 된다.

아니면, 시행일 이전에 발생한 연대보증채무는 각자 지분율의 2배 또는 3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는 특례조항을 두는 것에 대해 과거 연대보증 채무로 피해를 당한 건설업체들까지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하지만, 전국에 이런 지역 업체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며 "부도 위기에 내몰린 지방의 중소 건설업체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특례조항 신설을 통한 구제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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