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은 '언니'를 찍으면서 포기한 액션 장면이 있다

[노컷 인터뷰] '언니' 인애 역 이시영 ①

2019년 1월 1일 개봉하는 영화 '언니'에서 인애 역을 맡은 배우 이시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 그룹 제공)
새해 첫날인 내년 1월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언니'(감독 임경택)는 이시영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어느 날 사라진 여동생 은혜(박세완 분)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니 인애(이시영 분)의 여정은 위험천만하고 숨 가쁘다. 약한 존재인 은혜가 악인들에 의해 고통받는 내용도 가혹하게 펼쳐진다.

그나마 영화에 숨 쉴 부분을 만든 게 이시영이었다. 자기보다 덩치가 크거나, 칼이나 총 따위의 무기를 든 남성을 기술로 제압하고 하나둘 해치워 나가는 반격이 없었다면 '언니'는 말 그대로 답답하기만 한 영화로 남았을지 모른다. 이시영은 복싱으로 다져진 기본기와, '언니'를 위해 배운 주짓수 등을 바탕으로 수준급의 액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시영은 '언니'를 찍으면서 한계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더 다채로운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못 하고 넘어간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이시영의 액션 부분만큼은 한 점도 아쉬운 게 없었는데,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언니'의 원톱 주인공으로 극을 이끈 배우 이시영을 만났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신의 한 수' 이후 약 5년 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게 될 그는, '언니'를 복귀작으로 고른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 '언니'를 찍으며 가장 아쉬웠던 점

이시영은 7~8년 전 단막극 촬영을 계기로 복싱에 입문했다. 연기를 위해 잠깐 맛만 본 정도겠거니, 싶었는데 꾸준히 실력을 연마해 복싱 대회까지 나갔다. 2011년 서울 신인 아마추어 복싱전 여자부 48㎏급 우승을 시작으로, 같은 해 전국 여자 신인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 48㎏급 우승, 최우수 선수상 등을 거머쥐며 두각을 나타냈다.

복싱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한 이후, 이시영에게는 새로운 이미지가 생겼다. 액션 연기를 기대하게 되는 배우라는. 남성 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장르이다 보니, '여성 배우' 이시영에게 쏠리는 관심이 높은 건 당연했다.

이시영은 "액션이나 정의로운 형사 같은 역할을 많이 한 건 사실인데, 액션 영화를 하게 되면 되게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되게 잘해야 할 것 같고, 좀 더 다르게 잘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 생각보다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더라"라고 말했다.

임경택 감독은 이시영에게 대역 없이 현실감 있는 액션 연기를 보여주기를 바랐고, 이시영은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그러다 만난 '언니'는 평소 이시영이 꿈꿔왔던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었다. 이시영은 화려한 카메라 앵글, 빠른 커트, 멋진 미장센을 지닌 영화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의 액션은 아니"지만,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었음에도 주어진 환경과 여건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생각"한단다.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제 생각과) 정반대의 제안을 주셔서 고민을 조금 했었던 것 같아요. '대역 없이 100% 해 줄 수 있나. 풀샷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액션이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도 물론 그러고 싶지만 액션 (전문) 배우들보다는 사실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우리가 상업영화인데 진짜 이렇게 해도 괜찮나 싶었어요. 다행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되게 고민이 됐었지만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인 것 같아요. 영화의 큰 부분인 액션을 오로지 혼자 할 수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큰 행운이고요. 방법적인 부분은 최대한 노력해서 맞춰가 보자고 얘기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고 다치는 것보다 오히려 제일 힘들었던 점은, 제가 할 수 없는 게 나왔을 때였어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면 100% 진짜와 가짜가 보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엄청 현란한 고급 기술을 다 소화할 수 없다 보니까… 제 능력 밖의 것을 바라볼 때, 생각처럼 못했을 때가 있었어요. 어쨌든 대역 없이 하자는 데에 우리가 약속했으니, 못하는 건 뺄 수밖에 없었어요. 좀 더 멋있게, 좀 더 날아다니면서 빠르게 힘 있게 하고 싶은데 진짜 힘든 기술은 포기했던 것들이 있어요. 그럴 때 제일 아쉬웠어요."

◇ 이시영이 포기했던 액션 장면은

어떤 부분을 포기한 것인지 묻자 극중 김원해와 1대1로 맞붙는 장면을 들었다. 실제로는 영화에 나온 분량보다 훨씬 더 길었다고. 이시영은 "모든 씬을 원 씬 원 테이크로 찍었는데 막상 편집해 보니 그림이나 호흡이 깨질 수밖에 없어서 잘라 썼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그렇게 촬영하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모니터를 보면 (뒤에서) 힘이 빠진 게 확연히 보였다. 액션 한 시퀀스가 더 있었다. (김원해의) 몸을 타고 올라가서 다리로 목을 감고 굴러서 암바 거는 기술이 있었는데 그날 28시간 정도 촬영했나? 연기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선배님도, 저도. 그때 처음으로 대역 배우를 쓰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는데,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셔서 아예 그 부분은 촬영을 못 했다"고 밝혔다.

이시영은 '언니'에서 사라진 동생을 찾아 나서는 전직 경호원 역을 맡아 악당을 하나둘 처단해 나갔다. (사진=TCO㈜더콘텐츠온,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그동안 여러 작품에 나왔으나 액션 연기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김원해는 '언니'에서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한다. 이시영은 "운동신경이 되게 좋으셨다. 근육이 되게 쫀쫀하시고, 순발력과 순간적인 스피드가 진짜 좋으셨다"고 말했다. 이시영은 가장 액션 합이 좋았던 배우로도 김원해를 꼽았다.

가장 힘들었던 파트너는 이형철이었다. 이시영은 "형철 선배님이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기억에 많이 남았고 (액션을 하면서) 통쾌함이 있긴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영화를 최대한 순서대로 찍었다. (액션과 감정이) 점점 더 과감하고 거칠어지면서 그런 데서 오는 스트레스나 희열이 있었다. 카 체이싱할 때도 그렇고. 한 번 더 깊게 도전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 서른이 넘어서도 꿈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복싱

시종일관 자신을 낮추며 힘들었다고 토로했지만, 영화 속 인애의 모습은 조금의 어색함도 없었다.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상황에서도 남성들을 쓰러뜨려 나가는 이야기에 개연성을 더하기 위해, 주짓수를 활용한 액션을 많이 담기도 했다. 이시영은 3개월 정도 주짓수를 배웠다면서도 "주짓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맛만 봤다. 수박 겉핥기만 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주짓수가 이런 운동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된 정도라고.

이시영은 "진짜 심도 있고 어려운 운동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관절을 꺾는 운동이 주가 되는 것이라서 더 위험하고 체력적으로 더 힘들다. 타격하는 것보다 그래플링 기술이라고 엎드리고 메치고 조이고 잡고 이런 것들이 보기보다 훨씬 더 체력적으로 힘들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빤한 얘기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제압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설득력을 위해 특공무술을 겸비한 전직 경호원이라는 설정을 뒀다. 근데 타격하는 액션을 많이 하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피지컬적으로 (여자가) 남자 근력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관절기를 제압할 수 있는 것으로 갔다"고 전했다.

배우 이시영 (사진=제이앤씨미디어 그룹 제공)
이시영은 "저희 나름대로는 아예 허무맹랑하지는 않게 했다. 영화 들어가기 전에 체중도 늘려갔고, 좀 더 (액션을) 힘 있게 하려고 다른 영상 보면서 따라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연기를 위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재미를 느끼고 실력을 기르고 싶다는 마음에 대회까지 나갔던 이시영. 이번에 배운 주짓수는 어땠을까. 그러자 "진짜 힘들다. 제가 봤을 때 1년 정도 해야 기본기 조금 하게 되는 것 같더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주짓수는 (촬영 끝나고) 따로는 안 배웠어요. 계속 막연한 설렘은 있는 것 같아요. 복싱도 되게 우연히 만났거든요. 작품이 아니었으면 근처에도 안 갔을 텐데. 또 이렇게 뭔가 만나서 또 꿈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제가 복싱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서른이 넘어서도 꿈이 생길 수 있다는 거였어요. (복싱에) 올인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복싱을 진짜 잘했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을 거예요. 운동을 하다 보니 타고나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저는 계속 한계에 부딪히니까 이런 악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래서 오래하게 됐어요. 운동신경이 엄청났으면 오히려 (오래) 안 했을 것 같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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