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숨진 태안화력, '원·하청 통합관리'서 왜 빠졌나

'무재해 사업장' 된 비결…법 개정 과정에 제조업 등에만 한정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서부발전 본사 앞에서 20대 청년 사망사고의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사진=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제공)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직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올해부터 시행 중인 '원·하청 통합관리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제도는 하청업체의 산재(원청 사업장에서 작업할 경우)도 원청업체 산업재해 지표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산재 발생 건수조차 하청업체로 전가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올해 1월 첫 시행됐다.

실제로 태안화력은 잇달은 중대 안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 인증을 받았고, 본사인 한국서부발전도 산재 보험료 감면 등의 혜택을 입었다.

다행히 원·하청 통합관리제도로 이런 폐단은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태안화력 같은 발전사 등은 여전히 대상에서 빠져있다는 게 문제다.

이 제도는 통합관리 시행 대상을 '제조 및 철도·지하철 업종 중 원청의 상시 근로자 수가 1000명 이상인 사업장'으로 한정했다. 내년부터는 500명 이상으로 확대 시행되긴 하지만 대상 업종은 그대로다.


발전사 같은 전기·가스·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 광업, 해운업 등 제조업 못지않은 산재 취약 업종이 대거 제외된 것이다.

일례로,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태안화력은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8년 동안에만 무려 12명이 산재사고로 사망했다.

이처럼 통합관리 대상이 축소된 데에는 고용노동부와 정치권의 책임이 작지 않다.

지난 2017년 2월 이 제도의 법적 근거인 '산업안전보건법' 일부 개정안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 대표발의안과 노동부의 입김이 작용했다.

문 의원 안은 약 6개월 앞서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안과 비슷했다. 그러나 한 의원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자고 한 반면, 문 의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노동부도 행정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들며 문 의원 입장을 두둔했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고영선 당시 노동부 차관은 "문진국 의원님 안처럼 일정한 조건하에, 예를 들어 제조업 중에서 1000인 이상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한정을 해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그런 판단"이라며 대상을 좁힐 것을 거듭 요청했다.

이에 한 의원, 그리고 한 의원과 비슷한 입장이던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이 반발했다. 다만 결과를 바꿀 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문 의원은 "처음부터 대상 범위를 넓히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차원"이었다며 다른 배경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가장 사고가 많은 게 제조업이니까 우선적으로 업종을 국한 것이고, 앞으로는 추가 확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태안화력 사망 사건을 통해 발전사 하청노동 환경의 취약상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안이했던 판단도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정부는 이후 원청의 책임 등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내놨지만 여야 정쟁에 발이 묶인 상태다. 그나마 이 개정안에서도 태안화력 등은 여전히 대상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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