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내 친박계 중진의원들은 31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참석해 보수대통합과 '박 전 대통령 끝장토론'을 추진 중인 당 지도부를 작심 비판했다.
김병준 비대위 체제 발족 이후 공개 발언을 자제해왔던 친박 핵심 홍문종 의원(4선)은 "당을 나갔다 들어온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하고 앉아서 탄핵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당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당에 침 뱉고, 탄핵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대오각성해야 한다"며 탄핵에 동참했던 비박계를 정면 겨냥했다.
이같은 발언은 태극기 세력에 힘 입어 당 지도부와 비박계를 압박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앞서 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이 제안한 '박 전 대통령 끝장토론'을 역으로 활용해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범(凡)친박계 정우택 의원(4선)은 "김 비대위원장이 보수대통합을 이야기하는데, 집을 뛰쳐나간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수대통합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보수대통합은 차기 총선의 최대 숙제이기 때문에 이 과정은 차기 당대표가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대위 등 현 지도부가 바른미래당을 포함한 보수 진영의 대통합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차기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 의원은 비박계 등이 외부 보수인사들을 영입해 세(勢) 불리기에 나선 것으로 판단해 이를 견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친박계가 이처럼 당 지도부 방침에 강력 반발하며 현안에 본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 태극기 세력의 입당 쇄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SNS를 통해 태극기 집회 단체들이 유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당 당원 가입 촉구 글이 퍼진 바 있다.
해당 SNS에는 '전당대회 때 투표로 위장 우익 지도부들을 끌어내리고, 우익의 정체성이 확실한 김문수, 김진태, 황교안 등이 당권을 쥘 수 있도록 하자', '자유한국당을 진정한 우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똑바로 세워 놓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2~3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책임당원' 요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포함됐다. 현 한국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3개월 이상 매월 최소 1000원씩 당비를 납부하고 당원 자격을 유지하면 책임당원이 될 수 있다.
이같은 조직적인 홍보 효과 덕분인지 실제로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책임당원은 약 8000명 정도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당 조직국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방선거 이후에 매달 당원 가입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전당대회가 가까워져 오면 아무래도 당원 가입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 시도당 관계자는 "대체로 당원 가입은 시도당을 통해 하기 때문에 대강 어떤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근래 들어 태극기 세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가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태극기 세력이 대거 당에 유입되면서 차기 당권을 노리는 주자들도 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분위기다.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오 전 시장과 김 전 지사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태극기 세력을 보수통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오 전 시장은 통화에서 "태극기 세력도 내부적으로 보면 스펙트럼이 넓은데, 무조건 낙인을 찍고 보수통합에서 배제하는 것은 반민주적 행태"라며 "태극기 세력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도 "정리가 어느 정도 되면 큰 틀에선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이런 부분에서 보수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사실상 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비박계에선 보수진영 통합을 위한 태극기 세력의 영입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이를 이용한 친박계의 역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박계 한 초선의원은 통화에서 "최근에 태극기 세력이 들어오고 전원책 변호사가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 친박계가 고개를 슬슬 들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도로 친박당'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영원히 야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박계 재선의원도 "박근혜 끝장토론을 한쪽이 반성하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중간에서 태극기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게 되고 결국 계파 간 싸움이 난다"며 "우리 정치문화로 봤을 때 토론을 해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