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지난달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에서는 160개국(189개국 중 29개국은 순위 누락) 중 10위를 기록했다. 전세계적으로 성평등 톱10 국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같은 순위를 보도한 기사에는 "이거 봐라, 한국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거나 "한국 여성 인권은 이미 충분히 높다"는 류의 댓글이 대거 붙었다.
하지만 "WEF의 성격차지수에서는 한국이 144개국 중 118위에 불과하다"는 반박 역시 사실이다.
118위 vs 10위.
무엇이 진실이고, 같은 성평등 통계인데 이렇게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
◇ 성별 간 격차 VS 여성 삶의 수준
우선, 두 통계가 초점 맞추는 내용이 다르다.
WEF의 성격차지수(GGI)는 '남성과 여성 간 격차'에 주목한다. GGI에서는 지표별로 '남성 대비 여성 비율'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고위관리직에 올라 있는 남성 대비 여성의 수를 점수로 나타내는 식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삶이 얼마나 다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성격차지수는 격차(gap)를 비교하는 데 특화돼 있지만 여성인권의 절대적 수준(level)은 파악하기 어렵다. 국가의 발전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상대적 위치 차이만 살펴보기 때문이다. 국가 내 남성과 여성의 상대평가인 셈이다.
반면 UNDP의 성불평등지수(GII)는 지표에 따라 격차(gap)와 수준(level)을 혼용한다. 여성만 해당되는 출산 관련 지표의 경우 절대적 수준만 고려한다. 여성과 남성 모두 해당되는 정치·경제·교육 지표에서는 남녀비율의 격차를 살펴본다. 초점은 '여성이 어떤 수준의 삶을 사는가'에 맞춰진다.
◇ 정치·경제가 핵심 VS 건강·교육에 중점
더 중요한 것은 지표의 차이다.
WEF의 성격차지수는 ▲경제참여 및 기회 ▲교육적 성취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네 개의 영역에서 총 14개의 지표를 바탕으로 산출된다. 구체적으로는 ▲전문직 및 기술직·입법자 및 고위관리자·유사업무 임금평등·추정소득·노동참여, ▲문해율·초등교육·중등교육·3차 교육(대학 및 직업교육), ▲출생성비·기대수명, ▲국회의원·장관·여성 국가수장 재임 기간 등이다.
UNDP의 성불평등지수는 ▲생식 건강 ▲여성 권한 ▲노동 참여 3개 부문에서 총 5개 지표를 통해 측정된다. ▲모성사망비·청소년 출산율, ▲국회의원·중등 이상 교육받은 인구, ▲경제활동 참가율 등이다.
WEF와 UNDP의 지표 차이는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WEF 통계에는 성별 간 비교가 불가능한 모성사망비, 청소년 출산율이 포함되지 않는다.
반면 UNDP의 통계에는 WEF의 사회경제적 지표가 대부분 빠져 있다. 고위직과 전문직의 성비, 임금격차, 소득, 출생성비, 기대수명, 여성 장관 수, 국가수장 재임 기간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
◇ 한국의 성격차지수(GGI) 분석
한국이 높은 점수를 기록한 '건강과 생존', '교육적 성취'는 전 세계적으로 상향평준화 된 영역이다. '건강과 생존'(한국 0.973) 영역은 1위와 103위가 모두 0.970점대 이상이다. '교육적 성취'(한국 0.960)영역도 114위(마다가스카르)가 0.950일 정도로 높다. 두 지표에서 좋은 점수를 받더라도 큰 순위변화가 없다.
반면 '정치적 권한'과 '경제적 참여와 기회'는 국가 간 편차가 상당하다. 순위에 영향이 가장 큰 것도 이 두 영역이다.
'정치적 권한'은 중상위권까지는 변별력이 크고 그 밑으로는 낮은 점수에 몰려 있어 변별력이 낮다. 1위인 아이슬란드는 0.750이지만 2위인 니카라과는 0.576으로 훨씬 낮다. 60위 온두라스(0.200)부터는 0.2 이하이고 100위 브라질(0.101) 다음부터는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한국은 0.134로, 90위를 기록했다.
'경제참여 및 기회' 영역은 분포가 넓고, 특히 중하위권 밑으로는 편차가 커 변별력이 높다. 한국은 이 영역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순위가 대폭 하락했다. 0.533으로 121위를 차지했다. 세부 지표를 살펴보면, 영역 내에서 가장 높은 '전문직 및 기술직' 지표는 0.928점으로 중위권인 76위를 기록했지만 '유사업무 임금평등'과 '추정소득'이 121위로 낮게 나타났다. '입법자 및 고위관리자'는 117위, '노동참여'는 91위였다.
그러나 두 지표를 감안해 계산해도 한국의 순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지난 한국 문해율 통계를 반영하고, 3차 교육 취학률을 '완전 평등' 상태인 1로 가정하면 한국의 점수는 0.650에서 0.657로 높아진다. 전체 순위는 네 계단 상승한 '114위'가 된다. 결론적으로 순위는 거의 그대로다.
성격차지수에 관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나은 지표를 보이면 순위가 크게 오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WEF의 '2017 성격차 보고서(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7)'에는 "수치들은 '평등 기준점'에 맞추어 보정된다(these ratios are truncated at the "equality benchmark")"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이 더 나은 지표를 나타내도 지표상에서는 최대 1로 반영된다.
◇ 한국의 성불평등지수(GII) 지수 분석
GII 통계를 살펴보면, 한국은 '생식 건강' 지표가 상위권이다. 이는 '청소년 출산율'의 영향이 크다. 한국은 전체 국가 중 청소년 출산율(1000명당, 1.6명)이 가장 낮은 나라다. 그 다음으로 낮은 홍콩(2.7명)과도 꽤 차이가 난다. 전 세계의 평균 청소년 출산율은 44명이다.
성불평등지수는 각 영역·지표별로 정리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지표는 편의상 OECD 35개국을 추려 비교해봤다. 그 결과 한국은 35개국 중 여전히 10위였지만, 한국의 청소년 출산율을 제외한 모든 수치는 OECD 평균에 못 미쳤다.
성불평등지수에서도 가장 열악한 지표는 정치·경제 영역이었다. 한국의 여성의원 비율은 17%에 불과해 OECD 평균인 29.1%보다 한참 낮았다. 경제활동 참가율의 남녀 차이(남성 비율-여성 비율)도 한국은 21.0%p, OECD 평균 14.0%p로 한국의 성별 격차가 평균보다 크게 벌어졌다.
청소년 출산율을 제외한 모든 지표가 평균보다 낮은데도 한국이 OECD 35개국 중 10위에 오른 것은, '청소년 출산율'과 '모성사망비'가 계산방식상 다른 지표보다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모성사망비와 청소년 출산율은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지표이기 때문에 성불평등과의 연관성이 떨어진다. 이 두 지표는 성불평등 실태보다는 여성의 삶의 질 자체를 나타내는 것에 가깝다.
또한 UNDP의 성불평등지수는 임금격차, 노동시장 직종격리, 재산 접근, 가정폭력 등 다수의 사회경제적 지표가 빠져 있고, 지표가 5개로 제한적인 탓에 다양한 성차별 실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두 지표가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한국에서 교육·보건의 성별격차가 나타나지만 미미하며, 정치·경제 영역에서는 성불평등이 크다는 점이다. 다만 두 통계 모두 한정된 영역만을 설명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