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핵-현재핵 분리' 韓 융통성에 北美 응답할까

강경화 "비핵화, 과거와 다른 접근법 필요"
전통적인 '모든 핵 신고→검증→폐기' 아닌
현재 핵 핵심 '영변'과 종전선언 빅딜 제안
모든 핵 고집 않고 일부 반출 제안했던 美
폼페이오 방북 계기로 '빅딜' 논의할까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외교장관 회담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 비핵화 방식에 과거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북한이 이미 보유 중인 '과거 핵' 핵무기 리스트 신고에 앞서 '현재 핵' 영변 핵시설 폐쇄와 종전선언의 '빅 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미국에 제시했다.

전통적인 '모든 핵 신고→검증→폐기' 절차에 융통성을 발휘해 현재 핵과 종전선언의 교환을 먼저 시행하자는 우리 정부의 아이디어를 북미가 수용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先 핵시설, 後 핵무기' 분리 제안
워싱턴포스트(WP)는 3일 강경화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강 장관은 인터뷰에서 미국의 핵무기 목록에 대한 요구를 뒤로 미루고, 영변 핵시설의 검증된 폐쇄를 비핵화 협상의 다음 단계로 받아들일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

그러면서 강 장관은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영구히 해체할 것임을 시사했다"며 "종전선언의 상응조치로 그렇게 된다면 이는 비핵화를 위한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종전선언-영변 핵시설 폐쇄'의 빅딜을 언급했다.

북미는 현재 자신들의 패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덜 중요한 패로 더 중요한 패를 받아내기 위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이나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같은 미래 핵, 핵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영변 핵시설 등 생산관련 시설을 의미하는 현재 핵, 이미 완성된 핵탄두와 물질, 미사일을 포함한 과거 핵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제공할 체제안전보장의 수단으로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경제보장 차원에서 제재 완화, 관계 개선 차원에서 연락사무소 설치 등의 패를 가졌다.

미국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본토를 직접 겨냥하는 '과거 핵'이고, 북한의 그것은 대북 제재 문제다.

하지만, 전통적인 모든 핵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절차에 패를 짜 맞추기에는 불신이 팽배한 상태이므로 우리 정부가 가능한 종전선언과 영변 핵시설 폐쇄를 맞교환 하고 먼저 신뢰를 구축하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강 장관은 "언젠가는 (핵무기) 리스트를 봐야겠지만, 그 전에 충분한 신뢰를 줄 수 있는 행동과 상응조치가 있어야 그 단계에 신속히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4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한 내신기자 브리핑에서도 융통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강 장관은 "비핵화 조치와 또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매칭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융통성이 필요하다"며 "융통성의 내용에 구체적으로 한미간 생각을 같이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도 어느 정도 융통성을 갖고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도 '모든 핵 신고보다는 현실적 접근 택할 가능성
일각에서는 이러한 접근법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전략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기에 미국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도 초기부터 완전한 핵 신고와 검증을 목표로 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미국의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폼페이오 장관이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북한이 보유한 6~70%의 핵탄두를 미국 또는 제3국에 넘겨 폐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북한은 이를 거절했지만, 미국 역시 초기부터 모든 핵무기를 신고하라는 것이 북한에게 부담스럽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지난 8월 28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비핵화의 1차 목표는 북한의 핵탄두를 60%정도 없애는 것"이라고 현실적인 목표치를 제시한 바 있다.

때문에 우리 정부의 제안처럼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 현재 핵의 핵심인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교환 하는 조치를 진행하고, 다음 단계로 과거 핵인 핵탄두·미사일 체계 신고와 제제 완화 조치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영변 핵시설의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교환 하자는 것은 기존의 논의 흐름과 연결되는 것"이라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서 이 교환이 논의될 수 있고, 최근 북한이 유엔에서 공론화한 제제 완화 문제를 핵무기 체계 신고와 교환하는 방식도 논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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