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스쿨미투…양심선언하는 교사는 왜 없을까

최근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 수십여명이 교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해왔다고 고발했다.

이어 대구의 한 여고에서도 학생들이 그동안 선생님에게 당해왔던 성희롱 피해를 털어놨다.

대구 뿐만이 아니다. 대전, 광주,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스승이 제자를 성희롱하거나 성추행 했다는 폭로, 이른바 '스쿨미투'가 터져나오고 있다.

각 지역 교육청은 논란 속 학교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고 일부 학교에서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돼 경찰 수사로까지 넘어갔다.

대구의 한 중학교에 붙여진 미투 폭로 포스트잇. (사진=SNS 캡쳐)
폭로된 내용을 살펴보면 오랜 기간에 걸쳐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지만 이제서야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일부 졸업생들이 과거에 자신도 같은 피해를 겪었다는 내용의 댓글을 단 것으로 보아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문제가 이제서야 비로소 드러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진상 조사 과정에서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신상 노출을 우려하거나 경찰 조사를 앞두고 지레 겁을 먹는 바람에 가해자 처벌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이 지점에서 의문점이 제기된다. 아직 어린 피해 학생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도와줄 성인은 없었을까.

분명 사건이 불거진 학교의 동료 교사들은 적게는 수 개월, 길게는 수 년 동안 이어진 해당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이 장기간 피해를 겪어오는 동안, 심지어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난 후에도 학생들을 도와줄 교사, 양심선언을 할 교사는 없었는가.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이유는 '사립학교'에 있다.

최근 교사의 성폭력 고발이 이어진 학교는 대부분 다 사립학교다.

예전부터 사립학교는 재단이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바른 소리를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실제로 대구의 한 사립학교 교사 A씨는 학교와 재단의 비리, 악습 등을 알고 증거까지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는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봤자 학교나 재단은 처벌을 피하거나 약한 수준의 징계만 받을 게 뻔하다. 그 뒤에 돌아오는 건 고발자 색출과 불이익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주체이자 인사권자인 학교 법인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으니 비판을 꺼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교원 단체에 가입한 사립학교 교원 숫자에서도 교사들이 얼마나 재단의 눈치를 보는 지가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 사립학교 교원은 모두 11만4백여명인데 이 중 전교조에 가입한 비율은 4.5%다.

국,공립학교의 경우 교직원 37만5천여명 중 13%가 전교조에 가입해 있는 것과 대조된다.

한국교총도 마찬가지다. 국,공립학교 가입률이 사립학교 가입률보다 최소 2배~최대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한국교총은 정확한 회원 수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원 단체에 가입하는 주된 이유가 직업상 자신의 이익 향상,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위한 것인 만큼 가입률이 낮게 나타난 것은 직장에서 그런 주장을 내세우기 어렵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사립학교의 경우 장기간 한 학교에 근무하기 때문에 학교와 재단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기에 부담이 따를 가능성이 크다.

또 교사를 기간제로 먼저 채용한 뒤 그 중 일부만 정규 교사로 선발하는 사립학교의 특수한 채용 시스템이 교원들의 입을 틀어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좋은 평가를 받아야하는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등지고 '내부고발자'가 되는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다.

보통 미투 같은 사안은 젊은 교사들이 더 민감하게 발견하고 지적할 가능성이 큰데 사립학교의 구조와 시스템은 이를 원천 차단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자성의 목소리로 이어지지 않다 보니 피해자들의 상처는 더 오래 곪고 결국 짓무른 뒤에야 외부로 드러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사립학교가 한 재단의 소유물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 자리하도록 관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쿨 미투가 일었던 청주의 한 학교 학부모들은 "사립학교가 국,공립보다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부조리가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라며 교육당국에 사립학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촉구했다.

전교조 김동욱 부위원장은 "현행법상 사립학교의 문제가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 교육당국이 사립학교를 감시, 관리, 지도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해답은 사립학교법 개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대구교대 재학생 일부가 교내에 스쿨미투 지지 스티커를 붙인 모습. (사진=SNS 캡쳐)
한편 얼마전 대구교대 재학생 일부는 교사가 스스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들은 교대 캠퍼스 곳곳에 스쿨미투를 응원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앞으로 교사가 되어 마주하는 학교의 폭력을 방관하고 동조하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선언"이라고 설명했다.

용기를 낸 예비 교사들은 가까운 미래에는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성평등이 실현되는 교육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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