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짓던 라오스 댐 사고, 그 후

수해지역 주민, 현지 시민단체 최근 방한
"캄보디아 이재민 1만 5천…한국은 모르나?"
여전히 텐트생활…질병과 폭발물 유실 우려
SK건설·수출입은행, 추가 지원 계획 없어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피해 지역 주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치된 텐트(사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영란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제공)
라오스에서 댐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라오스와 주변국 주민 수만명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수해 지역 주민과 현지 시민단체는 최근 우리나라를 찾아, 댐 건설에 관여했던 한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 인접국 캄보디아, 식량안보 빨간불

사고가 난 세피안-세남노이 댐과 인접한 캄보디아 시암팡 냥쏨 주민 꽁 른(32)씨는 20일 CBS노컷뉴스 기자와 만나 "마을의 학교와 병원, 그리고 주요 교통수단인 수십척의 보트가 단숨에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올해 농사는 망쳤고, 가축도 많이 잃었다. 주민 한분은 대피 중 뱀에 물려 죽기도 했다"며 "이것은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매우 불공평한 일"이라고 성토했다.


최근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설사를 하는 사람도 많고 소와 버팔로의 경우 피부병을 앓거나 복수가 차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토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 피해 지역 주민 캄보디이아인 꽁 른(32)씨와 라오스댐 투자개발 감시단 소속 연구원 푸 분탄씨(사진=김광일 기자)
아울러 "한국이 지원한다는 건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며 "마을 주민들은 우리에게 피해를 보게 한 한국에 정말 실망했고, 또 미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와 SK건설 등은 사고 직후부터 한 달 동안 3차례 구호단을 파견하는 등 긴급 복구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을 라오스에 지원했다. 다만 이런 지원이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주변국에는 미치지 못했거나, 실제 체감도가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

캄보디아 지방정부는 냥쏨을 비롯한 메콩강 유역 17개 마을에서 발생한 이재민이 무려 1만 5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고 한다. 북부 지역의 경우 농경지 85%가 침수돼 식량안보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전해졌다.

◇ 여전히 텐트에서 생활하는 라오스인들

세피안-세남노이 댐 사고로 끊어진 라오스 쎄삐안 강의 교량(사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영란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제공)
19개 마을에서 7천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라오스 남부 지방 주민들의 고통도 현재 진행형이다.

주민 상당수가 집을 잃고 아직 관공서나 도로, 학교 등에 설치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질병이나 폭발물 유실 우려 등 2차 피해도 여전하다.

사고 직후부터 현장을 취재한 태국 공영방송 PBS 기자 즐라폰 컴파판씨는 지난 19일 한국 시민사회TF가 개최한 포럼에서 "라오스 주민 대부분이 설사와 복통을 호소하는 등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고 당일 발생한 일들을 잊지 못하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다"며 "병원이 너무 붐벼서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 태국 의료진에까지 지원을 요청하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라오스 수해지역(사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영란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 제공)
이달 초 현지 조사를 다녀온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영란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장은 "SK건설이 사고 직후 보호소를 건설한 것 말고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며 "코이카 등 한국 정부기관도 부재하고 국내 NGO 지원사업도 10월 이후에나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라오스 정부는 현재까지 39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으며 실종자 93명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외 NGO에서는 실제 사상자 규모가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우리정부 돈으로, 한국기업이 짓다 사고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건설 본사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라오스 댐 투자개발 감시단 활동가 태국인 쁘렘루디 다오롱씨(사진=김광일 기자)
수해 지역 주민들과 메콩강 유역에서 활동하는 현지 시민단체에서는 최근 참여연대 등이 꾸린 한국시민사회TF의 도움으로 방한해, 한국이 좀 더 책임 있는 조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사고가 난 댐의 시공을 한국 기업 SK건설이 맡고 있었고, 한국에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과정에 주변 지역에 미칠 영향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해당 댐은 라오스 정부와 SK건설, 한국의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 등이 투자한 돈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이들 기업은 27년간 운영과 관리를 맡을 예정이었다.

아울러 라오스 정부 투자금의 상당량은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차관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로 채워졌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을 '원조'와 '수출'을 결합한 최초의 복합금융 모델이라고 홍보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011년 12월 7일에 배포한 'EDCF, 라오스 대형 수력발전사업에 우리기업 진출 지원'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 캡처
평화교육 시민단체 피스모모 윤지영 정책팀장은 "한국 정부와 기업이 좀 더 책임감 있는 태도로 나서야 한다"며 "이번 사고는 지역 주민과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자본만 좇던 한국의 개발 방식과도 연결돼 있다"고 일갈했다.

라오스댐 투자개발 감시단 소속 캄보디아 연구원 푸 분탄씨는 "수해 지역 주민들은 한국에 실망했고 악감정까지 갖게 됐다"며 "심지어 캄보디아 피해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아예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SK건설과 수출입은행 측은 일단 당장 추가 지원 계획은 없으며, 정확한 사고 원인이 가려질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라오스 정부가 꾸린 조사위원회의 결론이 나기까지는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SK건설 관계자는 "회사는 앞서 1천만 달러를 라오스 정부에 전달했고 이게 어떻게 집행될지는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며 "캄보디아에 관해서는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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