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이후 경찰은 여론이 악화되거나 경찰관이 형사처벌을 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 위험 알고 있던 지휘부… "조기에 진압하려고 안전 희생"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사건을 조사한 결과 "조기진압을 목표로 해 안전이 희생됐다"고 5일 결론내렸다.
조사 결과, 참사가 일어나기 전날인 2009년 1월 19일 오후 경찰 지휘부는 대책회의를 열어 사실상 조기진압 및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경찰 지휘부는 현장에 있던 철거민들에게 시너와 화염병 등 위험한 물질들이 다수 있었고, 농성하던 철거민들이 분신하거나 투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
조사 결과 진압 작전이 수행되던 도중에도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청장실 옆 대책실에서 6차례 보고를 받고, 김수정 서울청 차장 등은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경찰은 화재 위험을 피하기 위해 크레인을 이용, 경찰특공대가 공중으로 망루에 접근해 진입한다는 작전을 세웠다.
일단 경찰은 300톤급 크레인 2대와 컨테이너를 동원해 망루 양쪽에서 접근해 이를 철거하고 내부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경찰이 건물의 내부 구조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거나, 화재 발생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계획과 달리 100톤 크레인 1대만 현장에 도착했고, 고가사다리차와 화학소방차는 오지 않아 화재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판단을 한 경찰특공대 제대장은 작전을 연기해달라고 상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서울청 경비계장은 제대장에게 "겁 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냐"며 이를 묵살했다.
20일 오전 6시 28분 서울청 김수정 차장이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고, 경찰특공대원들이 크레인을 이용해 망루로 진입했다. 곧이어 철거민들이 화염병으로 저항하는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했고 경찰특공대는 철수했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조치나 작전 중단, 변경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경찰특공대가 2차로 진입한 직후 2차 화재가 발생해 농성하던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조사 결과 1차 진입 후 망루에는 불이 잘 붙는 유증기가 가득 차 있어 불이 붙기 쉬운 상황이었다. 경찰특공대원들이 휴대하고 있던 개인용 소화기도 1차 화재 때 이미 사용해 보충이나 교체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유남영 진상조사위원장은 "경찰특공대가 1차로 진입해 화재가 일어난 뒤 재차 불이 날 위험이 커졌는데, 경찰 지휘부가 상황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철거민들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참사 뒤에도 '자기변호'만 신경쓴 경찰
조사위는 "경찰은 참사 이후에도 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진상규명보다는 자기 변호에 힘을 쏟았다"고 결론지었다.
조사 결과 경찰은 참사 과정의 과실에 대해서 여론이 악화되거나, 검찰에 기소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후 경찰은 온·오프라인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내려보냈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에 비판적인 게시물에 대해서 댓글을 하루 5건 이상 쓰게 했다. 인터넷 여론조사나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조사위는 경찰에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철거민들과 경찰특공대원에 대해 사과할 것과, 온·오프라인상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그만두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경찰의 집회·시위와 진압작전 수행에 있어 안전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안전과 관련된 매뉴얼을 공개하라고 함께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