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일은 왜 '상류사회'를 욕망했을까

[노컷 인터뷰] 박해일에게 '상류사회' 장태준이 가지는 의미
"특정 정치인 연기하지 않았지만 겹치는 인물 있을 수 있어"
"깊고, 넓고, 다양한 이야기 하고파…균형 잡고 싶은 바람"
"귀농 이야기도 도전 가능…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이"

영화 '상류사회'에서 정치에 입문한 경제학 교수 장태준 역의 박해일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상류사회'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박해일이 또 한 번 자신의 영역을 넓힌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 박해일은 존경받는 경제학 교수에서 정치에 입문하는 장태준 역을 맡아 연기한다. 2시간 동안 그는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가며 이 비현실적인 모순으로 가득찬 영화에 현실감을 덧입힌다.

처음 수애에게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박해일은 '영화에는 장태준 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는 함께 작품을 해보지 않은 수애가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건넨 것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전했다.

"배우가 배우에게 역할을 제안하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고려되어야 할 사안도 많고, 제안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려울 것을 알면서도 제안한 것 자체가 고마웠어요. 다음에 내가 제안할 수도 있고, 수애 씨가 또 제안을 하면 냉철하게 읽고 판단해야지. (웃음) 저희 둘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남매 연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장태준은 전문직이지만 허점이나 인간미가 있기도 하고, 최대한 현실에 발붙인 남자로 다채롭게 그려보고 싶었어요. 각자 자기의 방식대로 야망을 보여주는데 장태준 같은 캐릭터도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수연과 장태준이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거든요."

그가 생각한 오수연과 장태준의 차이점은 바로 '선'이다. 장태준은 권력을 욕망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한 기준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서는 '선'을 지키려 한다. 박해일은 장태준 캐릭터에 대한 힌트가 바로 초반 TV 토론회 장면에서 나온다고 봤다.

"태준은 경계를 갖고 있는 인물이죠. 토론회부터 '욕망을 자제시키는 건 전체주의고, 풀어 놓는 건 자유 방임'이라고 말하잖아요. 결국 태준은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절하는 것이 시민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나갑니다. 그게 흥미로웠어요. 태준은 현실과도 타협이 가능하고, 실용주의적이기도 해요.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도 자신의 뜻을 이뤄낼 수 있으면 손을 잡아도 상관없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태준과 제가 딱히 닮아있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현실적인 인물이에요. 오히려 인간미가 있어서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자문을 해나가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변혁) 감독님은 편하게 연기하라고 해서 그냥 결국 솔직하게, 저답게 잘 놀았던 것 같고요."


영화 '상류사회'에서 정치에 입문한 경제학 교수 장태준 역의 박해일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수애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을까. 박해일은 수애가 자신에게 장태준 역을 제안했을 때를 두고 '이미 수애는 그 때부터 오수연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오수연과 장태준 부부는 확실히 독특한 관계 설정을 갖고 있다. 서로 무관심한 쇼윈도 부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애틋하게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각기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마치 '동지'처럼 서로를 돕는다.

"편한 친구처럼 어떤 모습을 보여줘도 부담이 없는 관계? 친구 같고 동료 같은 부부인데 괜찮은 콘셉트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지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죠. 둘이 어떻게 연애를 했을지 저희끼리 전사를 얘기하기도 했는데 아마 오수연이 먼저 결혼하자고 하면 장태준이 그러자고 하지 않았을까요. (웃음) 굉장히 쿨한 캐릭터 아닌가요. 둘 중에서는 오수연이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때를 기다리지 말고 만들라'면서 장태준에게 불을 당겨 버리잖아요. 거기에 장태준이 따라가면서 모든 게 시작되고요. 실제로 저는 우리 집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캐릭터 같아요. 아마 그래서 영화에서는 현실과 좀 상반된 에너지를 찾나 봐요."

특히 정치인 연기는 그로서도 쉽게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장태준 교수가 TV 토론회를 하는 장면에서도 촬영 당시에는 실제 앵커가 사회자이고, 패널로 교수가 등장해 '진짜 토론회' 같은 느낌이었다고. 시사적인 이슈를 떠올리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적인 뉘앙스를 살려보자고 생각해서 뉴스를 많이 찾아봤어요. 실제 앵커분이 사회를 보고 교수님이 옆에 앉아서 대사를 하시는데 진짜 토론회 같더라고요. 집에서 TV를 볼 때는 막 욕하면서 보잖아요. 그런데 진짜 거기에 참여하니까 떨리기도 하고, 막 언성을 높이는데 기에 눌리더라고요. 정치인 역할을 하면서 어떤 구체적인 인물을 떠올려서 연기에 대입하지는 않았어요. 시대에 맞게끔 세팅은 돼야 하니까 인물과 인물이 겹쳐지는 수준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죠. 그런데 일단 영화는 영화로 봐주신 다음에 생각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영화 '상류사회'에서 정치에 입문한 경제학 교수 장태준 역의 박해일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해보고 싶은 작품에 참여해서 과정을 잘 겪고 만들어낸 결과물을 선보이고 싶어요.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야기를 깊고, 넓고 다양하게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균형을 잡는 것이 제 개인의 욕심이기도 하고, 바람일 수도 있네요. 제가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흥행 욕심이 없을 수는 없죠. 많이 보시면 좋으니까요. 살다보면 어떤 '기회'라는 지점이 있는데 배우에게는 그게 작품 선택에 대한 문제 같아요."

수애만큼이나 그와 환상의 조합을 자랑한 배우는 바로 특별출연한 김강우다. 김강우는 사업가로 위장한 조폭을 연기하며 장태준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운다. 잔인한 폭력이나 거친 입담 없이도, 영화에 코믹함과 긴장감을 더한다.

"김강우 씨를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연기가 정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요. 폭력을 쓰지 않는데도 코를 비집는다든가 이런 게 사실 더 강하더라고요. 요트 선착장에서 태준은 용감하면 무식하다고 막 달려드는데 김강우 씨가 담백하게 해줬어요. 그 장면은 완전히 (김)강우 씨가 주인공이죠. 촬영하기 전에 술을 많이 먹었거든요. 겨울이라 너무 추워서 술의 기운을 빌려 발음도 살짝 술취한 사람처럼 되게 도움을 받았던 게 생각나네요. 많이 먹으면 대사를 까먹으니까 그 정도로는 먹지 않았어요. 이번 영화에서 유독 헤드 스태프들끼리 저녁마다 다음 날 촬영 다듬을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회식 자리가 많았던 것 같아요. 파이팅이 좋았어요."

이제 만으로 41세.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박해일은 아직도 해보고 싶은 역할도, 영화도, 호기심도 많은 한창때의 배우다.

"시나리오는 마치 지도 같은 건데 그 길을 재미있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으면 호기심이 들어요. 영화 '제보자'와는 다른 이야기와 다른 톤의 기자 역할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근 시일 내의 사건만 보더라도 기자들의 힘이 어마어마하다고 봐요. 영화적으로 어떻게 매력적으로 만드느냐 의 문제겠지만요. 아니면 나이랑 상관없이 귀농해서 농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세팅이 어렵겠지만 자연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찍고 싶고, 서울 못지 않게 자연의 혜택을 좀 더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멜로도 해보고 싶네요. 제 나이가 그래요. 열심히 해야 될 나이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이기도 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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