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대화 의지를 천명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남측과 접촉하고 선수단을 파견했다.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남측에 파견하며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대화 의지를 내비쳤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측 대북특사단과 만나 비핵화를 '선대의 유훈'이라고 지칭하며 미국과의 대화 테이블에서 이 문제를 의논할 뜻을 밝혔다. 한미군사훈련에 대해서도 "이해한다"는 입장을 냈다.
북한은 '은둔의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중국을 두 번이나 찾는 등 '정상 외교'에도 힘썼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 명시함으로서 명백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했다.
급기야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평가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역시 협상 카드로 쓰지 않고 '선제적'으로 내밀었다.
북측의 이러한 '파격'은 세간의 기대심리를 자극하며, 남아있는 '의구심'을 하나하나 낮춰나갔다. 북미 간 불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화를 이어나갈 동력을 더하기는 충분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더해져 북미 협상은 간극을 점차 좁혀져 나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이 틀어진 것은 비핵화에 대한 세부적 합의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나왔다.
정보기관인 북한 통전부와 미국 CIA, 남한의 국정원이 큰 틀에서의 비핵화 대화를 주도해 왔지만, 세부적인 각론으로 들어가 북한 외무성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들의 '전통적 전략'이 일을 그르쳤단 것이다.
실제로 최선희 북한 외무성 국장은 24일 담화를 내고 최근 폭스뉴스에서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에 대해 '아둔한 얼뜨기'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부었다.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하는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앞선 지난 16일에는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 담화에서 백악관의 대북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며 회담을 재고려할 수도 있다는 뜻을 최초로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에는 미국이 '트럼프 모델'을 언급하며 북한을 달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이 연이어 펜스 부통령을 지칭해 공격하자 결국 정상회담 취소란 카드를 던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회담 막판에 상대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 이른바 북한식 '벼랑끝 전술'이 역효과를 불러온 것"이라며 "비핵화 방식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 개인을 꼬집어 비판하는 모습이 불신을 다시 불렀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없이 보상만 해주는 결과를 낳은 제네바 합의 등을 '과거의 실수'로 칭하며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온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이같은 역변이 달가웠을리 없다.
또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준비를 위해 미국이 접촉을 요청했지만 북한이 이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던 정황 역시 북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북 외무성의 전통적 전략이 북한의 과거의 모습을 상기시키고, 다음달 12일 북미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합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선언 이후 폼페이오 장관도 "미국은 회담의 성공 가능성이 적다고 봤다"고 언급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 내부에서 통전부와 외무성 간 충성경쟁, 혹은 주도권 싸움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판을 만든 것은 북한 내에서는 통전부인데 세부적 논의가 되면서 '벼랑끝 전술'에 능한 외무성 라인이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으로서는 미국 내 이견을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조율하며 끌고 나온데 반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목소리가 전무한데 대한 불만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