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수에 착수해 훼손 부재 보존처리, 보수 설계, 석탑 조립, 주변 정비를 2020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이미 민간업체가 해체해 부재가 가설덧집에 보관돼 있다. 당연히 공사 주체가 변경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수는 2012년 10월 문화재위원회 건축분과 회의에 안전진단 결과가 올라오면서 결정됐다.
당시 안전진단을 맡은 한국구조안전연구원은 "탑신부와 사자상 등 전체에서 변색, 박락(떨어져 나감), 파손을 확인했다"며 "지대석이 침하해 동측면과 남측면이 변형됐으며, 기단부에서 채움재가 유실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2013년 문화재 보수 국고보조사업으로 정비하는 방안을 받아들였다.
화엄사에서 문화재 보수를 많이 한 A업체가 구례군이 신청해 문화재청이 배정한 예산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책정된 예산은 5억원.
A업체는 2014년 계약을 체결하고 보수를 위해 먼저 가설덧집을 세웠다. 이후 2015년 1월 문화재위원과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A업체에 따르면 기술지도를 위해 참가한 전문가들은 충분한 조사와 외부 환경 정비, 부재별 구조안전 진단과 3D 스캔 실시, 탑신석과 기단 갑석 조사, 폐쇄회로(CC) TV 설치 등을 권고했다.
이어 2016년 8∼9월 석탑을 해체했고, 석탑 하부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매장물을 확인하기 위한 발굴조사와 부재 보존처리·3D 스캔 비용에 대한 추가 예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수 공사는 이에서 멈췄다. A업체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고, 문화재청은 지난해 석탑 부재가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뒤 조사를 벌여 업체에 교부된 예산과 실제 사용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A업체 관계자는 "예산이 부족한 이유를 적극적으로 구례군과 문화재청에 설명하지 못했고, 공사를 소홀히 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보물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전체 예산이 18억원인 반면,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5억원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재 수리를 할 때 예산을 책정하는 뚜렷한 기준이 없고, 추가 예산을 따내려면 절차도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민간업체가 담당한 보수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문화재청은 경주 감은사지 서삼층석탑, 불국사 다보탑과 삼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한 경험이 있는 소속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구소는 학술조사와 기록화 작업을 포함해 2021년까지 보수에 27억원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 나아가 구례군은 최소 27억원이 들어가야 하는 사업을 애초에는 5억원에, 그것도 민간업체에 맡긴 셈이다.
학계 관계자는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수에 8년이나 걸리고 예산이 일부 중복으로 투입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 뒤 "문화재청과 구례군은 예산을 정밀하게 책정하지 않고 관리와 감독을 소홀히 한 측면이 있고, 민간업체도 잡음이 나올 정도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까닭에 이 사업은 첫 단추부터 문화재청이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다른 학계 관계자는 "국보급 유물이나 희귀한 문화재는 책임 있는 국공립 기관이 직접 보수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며 "석탑은 필요하지 않은 데도 굳이 해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체 수리를 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