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깊어질대로 깊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쓸 수 있는 카드도 별로 없다는게 삼성의 제일 큰 고민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0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회관에서 10대그룹 전문경영인과의 정책간담회를 가진뒤 기자들의 질문에 "삼성그룹의 현재 소유지배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해결해야 한다"고 이 부회장을 지명했다.
김 위원장은 "결정이 늦어질수록 한국 경제에 초래하는 비용은 더 커질 것"이라고 삼성을 강하게 압박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도 비효율적이며 선택을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자발적인 처분을 요구하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오랜 삼성 저격수였던 김상조 위원장의 이날 발언이 새로운 내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다시 한 발언이기 때문에 삼성이 느끼는 무게감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은 전체주식의 8.23%로 액수로는 26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험사 총 자산의 3%를 넘는 계열사 주식은 처분하도록 돼 있어서 이 법이 발효되면 삼성생명은 약 19조원에서 20조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야 한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라도 삼성생명이 보유중인 삼성전자 주식을 자발적으로 처분할 것으로 요구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정위의 이런 뜻을 간담회에 참석한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밝혔고 삼성도 고민중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삼성의 가장 큰 고민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에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지분, 어머니 홍라희 여사의 지분 등 총수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을 다 합해도 5%가 안된다는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삼성생명이 8.23%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삼성전자 경영권 유지의 중요한 고리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이 팔야야 할 삼성전자 주식을 나머지 삼성 계열사들이 사들여야 한다.
최근까지 가장 확실하고 가능성이 높았던 방법은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대주주인 삼성물산이 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블록딜 형태로 팔고 여기서 마련된 자금으로 삼성생명이 매각하는 삼성전자 지분 상당부분을 사들이는 방법이었다.
삼성로직스 주가가 좋을 경우 약 10조원 가까이를 이렇게 해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게 삼성의 플랜가운데 하나였지만 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식가치가 거의 반토막이 난 현재 상황에서는 이 해법을 쓰기도 어려운데 문제가 있다.
또 삼성물산이 삼성 웰스토리나 제일모직, 래미안 등을 팔아서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도 역시 삼성의 플랜 가운데 하나였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모든 현안들은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있다면 조정가능했을 수 있지만 삼성은 이미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해체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생명, 물산에 경영지원 TF 3개를 만들어 각 사업부문별 업무조정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사업부문을 넘어서는 조정이 불가능한 것도 현실이다.
아니면 이른바 박용진법에 따라 삼성생명이 내놓는 주식을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사들인 뒤 즉시 소각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법이 통과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생명이 보유한 주식이 갖던 의결권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삼성 입장에서는 이 또한 취하기 어려운 대안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에 정통한 한 애널리스트는 CBS노컷뉴스에 "최악의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그냥 시장에서 내다 팔라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될 경우 삼성전자는 그야말로 주인없는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다른 증시 분석가는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적대적 M&A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위원장에 이어 공정위원장까지 나서 삼성생명 지분매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삼성은 '고민중'이라는 대답뿐 뾰족한 해법을 찾기도 힘든 상황인 것이 현실이다.
물론 삼성으로서도 할말이 많지는 않다.
지배구조 이슈가 제기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 중심에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이 있었는데 매년 1%씩이라도 주식을 팔아 왔더라면 부담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 이런 지배구조 이슈와는 별개로 삼성생명으로서도 고민이 크다.
정부의 요구대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20조원 정도의 자금이 마련됐을 때 이 자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보험사가 고객이 낸 보험료로 조성된 자금은 부동산이건 채권이건 주식이건 어디에 투자해 수익을 내야 하는데 지금은 부동산 불패시대는 이미 끝났고 채권의 수익률이라야 은행이자 정도인 상황이다.
따라서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주식뿐인데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20조원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삼성전자만큼 수익을 내 줄 수 있는 주식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점도 삼성생명 경영진으로서는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삼성총수'로 지명된 이재용 부회장이 험난한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