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같은 내용을 담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2016년 운영된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하 상황실)은 형식상 2015년 8월 7일 고용노동부 차관 직속기구로 서울노동청 9층에 설치됐다.
노동부 공무원 외에도 산업자원부,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노동 관련 부처 공무원 10여명이 상주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지휘하며 '청와대 노동시장개혁TF 회의'(이하 BH회의) 자료를 작성하고,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비선기구였다.
'BH회의'는 고용복지수석, 또는 고용노동비서관이 주재했는데, '상황실' 설치 전날인 2015년 8월 6일부터 활동하면서 △한국노총 노사정위 미복귀시 대응방안 △보수청년단체 동원방안 △야당정책 대응방안 △기획기사·전문가 기고 조직 및 TV토론 기획 등을 결정·지시하고, 실행사항을 점검했다.
특히 '상황실'은 자신들이 작성한 문서 파일을 매일 삭제하고, 개인 PC에 문서 파일을 보관하지 못하도록 막고, 출력물은 사용 후 즉시 파쇄하는 등 철저히 비밀리에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 '양대지침' 예산 빼돌려 몰래 홍보… 야당·노조 매도 공작에 혈세 낭비
우선 '상황실'이 '노동시장개혁' 홍보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회계 중 실국 소관 예산 중 일부를 몰래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노동개혁은 '쉬운 해고'와 사측의 일방적인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관련 요건을 완화하는 '양대지침'을 비롯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용보험기금 운영계획 변경 등의 수법으로 102억 6천만원을 노동개혁 홍보예산으로 몰래 집행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세대간 상생고용 지원사업에는 2015년에 123억 3천만원을 편성, 18억 7백만원을 집행했는데, 이 가운데 13억원은 노동개혁 홍보예산으로 몰래 빼돌려 사용하는 식이었다.
이 때 정부가 직접 나서서 노동개혁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관련 시행령을 어기고 '협찬약정 방식'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TV광고의 제작사 선정과정에서도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방송사에게 특정 업체가 해당 광고를 제작하도록 지정해 도급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 합의나 국회 통과를 앞둔 사회적 논쟁 사안에 대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정부 입장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고, 노조에 대한 반감과 사회적 고립을 조장했다.
실제로 2015년 8월 7일 '상황실' 회의에서 노동비서관이 "과도한 보호를 받고 있는 노조를 압박하자는 취지이므로 노동단체를 자극하더라도… 메시지 창출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이후 정부 예산이 지급된 기획기사·카드뉴스에선 "'갑중의 갑' 기득권 노조", "10% 위한 대기업 노동조합과 노동단체" 등으로 노조를 매도했다.
◇ 보수단체 동원에 돈줄 틀어막기까지… 전방위 야당·노조 압박
야당을 비판하고 노동단체를 압박하기 위해 보수청년단체를 정부가 동원한 사실도 확인됐다.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 소속 공무원이 'BH회의'에 참석해 보수청년단체의 동향을 보고하면 김현숙 전 수석이 구체적인 동원 방식을 제시하고, 청년위원회 소속 공무원이나 수석보좌관이 이를 전달해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또 김 수석이 'BH회의'에서 야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노동단체를 압박하기 위해 보수청년단체의 기자회견 등을 직접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비선조직의 칼날은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가진 야당에도 향했다. '상황실'이 야당 정책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해 'BH회의'에 일일보고하는 방식으로 야당 및 야당정치인 대응방안을 기획·보고한 것이다.
'야당의 노동개혁 현수막 관련 대응문서', '문OO 의원 발언 관련 검토', '야당 노동개혁 법안에 대한 대응논리 검토', 새누리당 당원에게 배포할 '노동개혁 문자 메시지(안)' 등 'BH회의' 결정에 따라 '상황실'이 작성한 문건의 제목만 봐도 당시 비선기구의 활동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문건에 담긴 내용은 당·정·청 공조나 여당 당내인사는 물론, 경영계 언론에 기고하거나 청년우파단체의 SNS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2015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한국노총에 대한 재정적 압박에도 이들 비선기구가 활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국노총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지시했고, 실제로 2016년 상·하반기 노동단체 지원 사업 선정심사위원회에서 한국노총이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이병훈 위원장은 "민주노총 앞에서도 보수청년단체를 동원해 피케팅하는 사례들도 확인됐다"며 "양대노총에 대한 압박을 기획하고, 실제 실행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신문지면 사들이고 TV토론 기획하고… 언론도 靑 마음대로
정부 노동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 지면을 돈을 주고 사들이고, TV토론 제작에 개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노동부가 기사의 주제와 구성을 특정해 언론사에 건당 약 1천만원씩 지급하고 지면을 구매하는 '기획기사 유료구매'가 20건 이상 확인됐고, 이 가운데 13건은 지급금액과 증빙까지 확인됐다.
노동부가 전문가를 섭외해 기고문을 청탁하고, 받아낸 원고를 확보한 언론사 지면에 대신 게재한 사례도 확인됐다.
또 2015년 9월에는 MBC '100분 TV토론'의 주제와 특정 패널 구성안까지 제시해 '공정해고'를 주제로 토론하도록 추진하고,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이 토론 출연자를 파악하는 등 TV토론 추진 현황을 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도 김현숙 전 수석이 'BH회의'를 통해 위와 같은 여론화 작업을 기획·지시하고 집행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외압을 행사한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현숙 전 수석을 각각 직권남용과 직권남용·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비록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사안이라도 김영주 노동부 장관이 직접 유감을 표명할 것을 권고했다.
이 위원장은 "노동부에도 대변인실 등 홍보 담당 실·국이 있고, 정부 정책에 대해 정당한 절차로 정당한 업무의 성격에 맞게 홍보했다면 문제가 없다"며 "(상황실과 BH회의는) 그와 별도로 비공식적으로 운영됐고, 법을 위반하거나 부당한 행정행위를 범했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위원회는 국가정보원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부 지방관서를 대상으로 개인·기업의 고용보험 정보를 무차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주부, 식당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대기업 사원부터 대학 교직원, 기업 임원, 현 정부 장관 등 민간인 총 592명에 관한 고용보험정보와 303개 기업의 고용보험 가입자 및 상실자 현황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