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책은 시인에게…봄의 책방으로 오세요"

- 1:1 책 처방 해주는 서점…마음 치료
- 부산, 대전에서도 버스타고 방문해
- 사람과의 소통에서 벽 느끼는 현대인들
- "오는 인연 소중히 여기는 봄 맞으시길"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김이듬 (시인, 책방 '이듬' 주인)


일산 호수공원 앞에 작은 서점에는요. 시인이 늘 앉아 있습니다. 이 시인은 바로 이 책방 주인장인데요. 여기까지만 들으면 글쎄, 평범치는 않지만 뭐 그럴 수 있지 하는데 이 주인장은 서점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에 딱 맞는 책을 처방해 준다고 합니다. 마치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 약 처방해 주듯이 그렇게 책을 처방해 주는 건데요. 그래서 화제가 된 곳, 오늘 화제의 인터뷰 이 책방의 주인 김이듬 씨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이듬> 안녕하세요?

◇ 김현정> 그러니까 병원과 같은 책방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죠?

◆ 김이듬> 네, 그렇죠.

◇ 김현정> 언제 문을 여신 겁니까?

◆ 김이듬> 작년 10월에 책방 문을 열었어요.

◇ 김현정> 병원에 가면 우리가 접수를 하고 의사 만나서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타서 약국 가서 약 받아오고, 이런 식인데. 이 책방에서는 어떤 식으로 처방을 해 주시는 거예요?

◆ 김이듬> 팔이 부러지면 깁스한다거나 이렇게 두통이 있으면 약을 주는데 마음의 문제 또 책의 연관성은 그렇게 1:1로 이렇게 대응되는 건 아니지만 책 처방이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고민에 맞는 책을 처방해주는 책방 '이듬' (사진=김이듬씨 제공)
◇ 김현정> 거기에 앉아 계시는 우리 시인한테 찾아가서 상담 좀 받고 싶어요하면 상담해 주시고 쭉 듣다가 그분한테 맞는 책이 떠오르면 그걸 추천해 주는 식?

◆ 김이듬> 네, 맞습니다. 책을 읽으러 오거나 사러 오는 손님들을 만나게 되면 구입할 책을 결정해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책을 읽고 싶기는 한데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몰라서 물어보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문제나 마음의 상처 그런 게 드러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분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꼭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던 것처럼 줄줄 이야기를 꺼내놓으세요.

◇ 김현정> 그래요. 찾아오는 손님들이 초면이지 않습니까? 난생처음 보는 분한테 그렇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까 싶은데 그렇게들 하세요?

◆ 김이듬> 사실 저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는 분이 많아요.

◇ 김현정> 그분들의 제일 많은 고민은 뭐예요? 아마 요즘 현대인들의 고민이 그게 될 건데요.

◆ 김이듬> 멀리 부산에서 대전에서 이렇게 오시는 분들 보면 갈급한 무엇인가가 있는 분들이 많았어요.

◇ 김현정> 대전, 부산에서도 버스 타고 오세요?

◆ 김이듬> 네. 일단 우리 시대가 많은 질병 같은 그런 징후를 앓고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현실적인 문제 또 취업의 문제.

◇ 김현정> 역시.

◆ 김이듬>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함에 있어서 느끼는 어떤 벽? 그런 것들에 대한 것들.

◇ 김현정> 인간관계에 대한 거... 제가 짐작한 대로네요. 우리 고민이라는 게 사실 비슷비슷한 거예요, 그러고 보면.

◆ 김이듬> 그렇죠.

◇ 김현정> 그러면 지금까지 만났던 그 많은 고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고민이 있다면?

◆ 김이듬>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어요. 부모님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조부모님 댁에 머물고 있다고 했어요. 그 친구하고 한 시간 넘게 상담을 했는데 우울증 증세도 있고 남자친구 문제 이런 이야기들을 주로 했습니다. 제가 말하기보다는 그분의 말을 더 많이 들어주게 되었어요.

◇ 김현정> 그 친구가 제일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요? 다 고민은 다 비슷비슷하게 갖고 오는데 특별히 왜 기억에 남아요?

◆ 김이듬> 그 친구는 자기가 혼자 온 게 아니고 조부모님께서 그 친구를 데리고 왔어요.

◇ 김현정>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랑 얘기를 해 보세요 하고 데리고 오신 거예요?

◆ 김이듬> 네. 거기서 제가 한 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누고 나와 보니까 할머니께서 제 손을 이렇게 잡고는 눈물을 글썽글썽하시면서 우리 애가 얘기를 저렇게 술술 하는 걸 너무 오랜만에 본다고 하면서. 할머니께서도 나도 책을 좀 권해 달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 김현정> 뭉클하네요. 온 가족이 '우리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책을 좀 처방해 주세요.'

◆ 김이듬> 책이 마음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 주지는 못하죠. 상처를 무조건 덮으려고 하면 안 되고요. 문제를 확연히 들어볼 수 있도록 오히려 그것을 상처를 더 건드려주는 책도 사실은 필요하고요. 제대로 잘 처방을 해야만 독서의 폭이 더 확장되고요. 또 오래도록 책을 좋아하면서 삶의 동반자처럼 지니고 다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김현정> 뭉클하네요, 들으면서. 그런 기억에 남는 상담자가 있었고 사실은 저희 청취자들이 저한테 고민 보내주시는 분들이 꽤 계세요. 보내주셨던 고민 중에서 우리 김이듬 씨가 나오셨으니까 제가 한번 책 처방 주문을 넣겠습니다, 대신 넣겠습니다. 이런 문자가 있었어요. '요즘 여기 저기서 미투 고백들 쏟아지는 거 보면서 우리 사회에 그동안 가려져 있던 그늘이 드러나면서 걸 목격하면서 참 우울하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힘을 낼 방법이 없을까?'

고민에 맞는 책을 처방해주는 책방 '이듬' (사진=김이듬씨 제공)
◆ 김이듬> 이런 미투 운동이 우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데 이럴 때에는 한국의 여성 시인이자 교수님이시기도 하고 책 제목이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 있어요.

◇ 김현정>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 김이듬> 이렇게 말했다. 이거는 아니다, 그렇지 않아 이런 말을 할 때 '않아'예요.


◇ 김현정> 김혜순 님의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 김이듬> 그 책을 보시면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데 터치를 한다거나 강요하거나 요구할 때 '아닙니다, 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가만히 있으라고 이렇게 말할 때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주는 책이기도 하고요.

◇ 김현정> 그런데 여기서 '않아'는 '아'에다가 '니은', '히읗' 받침을 쓰는 '않아'군요. 그게 또 어떻게 보면 ‘아, 나는 이렇게 말했다.’일 수도 있고.

◆ 김이듬> 그렇죠. 역시 다르신데요, 감각이. (웃음)

◇ 김현정> 아이고, 고맙습니다. (웃음) 그러니까 노라고 이렇게 말하십시오라고 알려주는 책.

◆ 김이듬> 맞습니다. 노 할 때 노 하고 또 경쾌하게 선뜻 예스 하고 말할 수 있을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참 좋죠.

◇ 김현정> 지금 들으시는 분들 중에 고민은 다 다를 거예요. 다 다르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누구나 들어도 이 시를 좀 읽으면 치유가 어떤 식으로든 되실 겁니다. 그런 거 하나 추천해 주신다면?

◆ 김이듬> 제가 한편 읽어드릴까요, 짧은 걸로?

◇ 김현정> 그럼 너무 좋죠. 시인 김이듬 씨이자 책방 주인 김이듬 씨의 시 낭송.

◆ 김이듬> 봄날이니까 한 존재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지 느낄 수 있는 짧은 시 한편 읽어드릴게요.

◇ 김현정> 좋습니다.

◆ 김이듬> 제목은 봄의 정원으로 오라입니다.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릴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약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6행의 짧은 시예요. 다음에는 더 긴 시로 제가 준비를 잘해서 읽어드릴게요. (웃음)

◇ 김현정> 아니에요. 저 지금 굉장히 좋았어요. (웃음) ‘당신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오면 또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김이듬> 그래서 한 존재가 온다는 건 그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가지고 오는 것이고 우주만큼 큰 의미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 그만큼 소중하게 인연을 여기고 또 감사한 마음으로 대해야 된다, 그런 의미인 것 같기도 해요.

◇ 김현정> 그리고 여러분, 당신 그 자체도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 시 들으면서 여러분도 많이 치유되셨을 거라고 생각하고 저는 이런 책방들이 곳곳에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봄날 아침에 좋은 시 선물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마음에 평안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이듬> 감사합니다, 선생님.

◇ 김현정> 목소리만 들어도 훈훈해지네요. 책 처방을 해 주는 화제의 책방 주인공, 김이듬 씨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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