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최영록 세제실장은 최근 보유세 개편 방안과 관련, "공평과세 관점에서 볼 것"이라며 "주택임대소득이라든지 다른 소득간의 형평 문제, 거래세와의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주제는 상당히 국민 생활에 많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라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라며 "재정개혁특위가 구성되면 여러 방안을 검토해 안(案)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세제 개편을 주도하는 기재부의 이같은 입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취임 전부터 최근까지도 보유세 인상에는 극도로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조세부담의 형평성 문제, 거래세와 보유세간 조세 정책적인 측면에서 어떤것이 바람직한 조합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정부가 '거래세와의 형평성'을 꾸준히 강조하는 건 국내 재산과세 구조가 다른 나라와는 정반대로 거래세 비중이 높은 대신, 보유세 비중은 현저하게 낮기 때문이다.
한국의 보유세 비중은 25.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32위 수준이다. 93.4%인 미국은 물론, 75.9%인 일본이나 75.7%인 영국, 64.3%인 프랑스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러다보니 GDP(국내총생산) 대비 거래세 비중은 1.6%로 OECD 평균인 0.4%를 크게 웃도는 반면, 보유세 비중은 0.8%로 OECD 평균인 1.1%을 밑돌고 있다. 특히 보유세의 실효세율은 0.279%로 미국의 1.4%에 비해 5분의1 수준이다.
정부가 오는 4월부터 다주택자 중과 등 양도세는 강화하기로 방침을 굳힌 만큼, "형평성을 고려하겠다"는 거래세는 취득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양도세 중과를 불과 80여일 앞두고 다시 '인하'로 역주행하는 정책 혼선을 자초하기란 쉽지 않다.
현재 취득세는 6억원 이하일 때 1%, 6억~9억원은 2%, 9억원 초과시 3%가 매겨진다. 종합부동산세나 양도세와 달리 지방세이기 때문에,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 문제를 지방자치단체와 합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 70% 이상이 요구하는 부동산 세제 개혁의 방향은 '거래세 개편'이 아닌 '보유세 개편'이란 점이다.
당국은 재산세의 경우 1주택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율 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제쳐둔 상태다. 시세의 60~70%에 불과한 공시가 현실화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소극적인 입장이다.
특히 다주택자를 겨냥한 종부세 세율 인상 여부에도 "입법 과정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논리로 명쾌한 정책 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있다. 대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일부 상향 조정하는 방안에 대해선 긍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재산세는 공시가에 60%, 종부세는 80%의 공정가율을 곱해 과세 표준으로 삼고 있다. 보유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이명박정부 당시 도입된 개념으로, '종부세 무력화'의 요인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국회 입법 절차 없이 시행령만 손보면 된다는 점에서 당국이 종부세의 공정가율을 90~100%로 상향 조정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은 "일단 정부가 보유세를 엄청 높이겠다는 의지는 엿보이지 않는다"며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 수준으로도 복귀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불평등의 주범인 부동산 문제에 대해 정부 차원의 담대함이나 상상력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유세가 크게 강화되면 투기 보유자들이 매도에 나서 집값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매매차익이 줄어들면서 양도세의 실효성은 낮아질 공산이 크다.
반면 당국의 보유세 인상 의지가 모호할 경우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보유세 인상에 따른 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이 압도하는 상황에선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을 리 없다. 팔지 않고 버티기로 굳힌 마당에 거래세가 신경쓰일 리는 더더욱 없다.
남 소장은 "기형적인 공시가 현실화, 주택 소유자의 1.7%에만 부과되는 종부세 환원 필요성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정면돌파해야 한다"며 "보유세를 확실히 강화하면 사실 거래세는 존재 의의도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