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글의 기준? 박용택 자체와 소감이면 다 해결된다

'내가 바로 골글의 기준?'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BO 2017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에 선정된 LG 박용택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박종민 기자)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13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 올해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군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들이 선정되는 행사였다.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군계일학으로 몰표를 받은 선수가 있는가 하면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다른 변수들에 의해 아쉽게 고배를 마신 후보들도 있었다. 이날 사회자의 "평생 한번도 받지 못하고 은퇴할 수도 있다"는 멘트만큼 받지 어려운 황금장갑이다.

특히 LG 베테랑 박용택(38)의 수상 소감은 골든글러브의 선정 기준의 핵심을 드러냈다. 여기에 본인의 수상 자체도 황금장갑의 또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박용택은 지명타자 부문에서 수상했다. 유효표 357표 중 184를 얻어 79표의 이승엽(삼성)과 78표의 나지완(KIA)을 제쳤다. 본인의 4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이자 지명타자로는 처음이다. 이전에는 외야수 부문이었다.

수상 뒤 박용택은 "여기 무대로 올라올 때마다 머리가 하얘진다"며 자못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이어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박용택은 "올 시즌 KIA의 우승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각종 시상식장을 보면 온통 KIA 판"이라면서 "너무 부럽고 내년 시즌에는 LG도 동생들 10명이 골든글러브 후보로 올라오게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골든글러브의 가장 중요한 기준 하나가 나온다. 바로 우승이다. KIA는 이날 10개 부문 중 절반인 5명의 수상자를 냈다. 투수 양현종과 2루수 안치홍, 유격수 김선빈과 외야수 최형우, 로저 버나디나 등이다.

'이게 우승팀의 위엄' 김민호 코치(왼쪽부터), 최형우, 김선빈, 양현종, 김태룡 코치 등 KIA 선수단이 13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 김 코치는 각각 안치홍, 로저 버나디나의 대리 수상이다.(사진=KIA)
모두 수상을 할 만큼 빼어난 성적을 냈다. 그러나 다른 경쟁자들을 누를 수 있던 데는 우승 프리미엄이 적잖게 작용한 것도 있었다. 엇비슷한 성적이면 정상에 오른 KIA 선수를 뽑는 우승 후광이 없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포지션이 2루수와 외야수 부문이다. 특히 안치홍은 2위와 격차가 불과 6표였다. 이날 안치홍은 140표를 얻어 134표의 박민우(NC)를 가까스로 제쳤다. 유권자 4명만 생각을 달리 했다면 수상자가 바뀔 수 있었다.

성적은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안치홍은 올해 132경기 타율 3할1푼6리(18위) 21홈런 93타점 95득점(10위)에 수비율 .980을 기록했다. 박민우는 106경기 타율 3할6푼3리(3위) 3홈런 47타점 84득점 출루율 4할4푼1리(2위)에 수비율 .984를 기록했다. 그러나 더 많은 출장과 높은 우승 기여도의 안치홍이 6년 만에 수상했다.

외야수도 마찬가지다. 이 포지션은 3명의 수상자에 무려 22명의 후보가 몰려 최대 격전지로 꼽혔다.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둔 후보들이 즐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KIA가 3명 중 2명이나 수상자를 배출했다.

역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하면 KIA의 빨간 유니폼이 선택을 받았다. 외야수 최다 득표(224표)의 손아섭(롯데)은 워낙 특출났다. 144경기 모두 출전해 안타 1위(193개), 득점 2위(113개), 도루 3위(25개), 출루율 7위(4할2푼), 타율 9위(3할3푼5리)에 생애 첫 20홈런-20도루까지 달성했다.

나머지 2명이 KIA였다. 최형우(215표), 버나디나(190표)였다. 성적은 훌륭하다. 최형우는 출루율 1위(4할5푼), 타점 2위(120개), 타율 6위(3할4푼2리) 등 타격 7개 부문에서 톱10에 올랐다. 버나디나는 득점왕(118개)에 도루 2위(32개), 안타 5위(178개) 등 6개 부문 톱10이었다.

'두산, 지난해가 좋았지' 2016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통합 우승을 이룬 두산은 양의지(앞줄 왼쪽 두 번째부터), 김재호, 김재환 등 4명의 골든글러브를 수상자를 냈지만 올해는 단 1명도 뽑히지 못했다.(자료사진=이한형 기자)
하지만 수상이 충분했던 성적의 낙선자들이 있다. 바로 두산 듀오 김재환, 박건우다. 둘은 각각 140표, 99표를 얻었다. 김재환은 안타 2위(185개), 홈런(35개)-타점(115개)-출루율(4할2푼9리)-장타율(6할3리) 3위, 득점 4위(110개), 타율 7위(3할4푼)에 올랐다. 박건우도 타율 2위(3할6푼6리), 도루 5위(20개)에 20홈런까지 달성했다. 둘은 프로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의 올해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도 단연 전체 1, 2위였다.

그러나 부족한 2%가 있었다. 바로 우승 효과다. 지난해 우승했던 두산은 김재환 등 4명의 후보를 냈다. 반면 준우승에 그친 올해는 단 1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박용택의 수상 자체도 골든글러브의 또 다른 기준을 제시한다. 아무리 우승 프리미엄이 붙어도 대기록에는 범접할 수 없다. 박용택이 그걸 입증한다. 올 시즌 박용택은 175안타를 때려내며 KBO 최초로 6년 연속 150안타 금자탑을 쌓았다.

타율과 안타, 출루율 등을 빼면 나지완이 박용택을 앞선다. 지명타자는 그야말로 홈런 등 장타력, 타점 생산 능력이 우선인 포지션인 까닭이다. 나지완은 올해 27홈런 94타점 85득점을 기록했다. 14홈런 90타점 83득점의 박용택보다 많다. 그러나 기념비적인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올해 은퇴한 이승엽이 지명타자 2위 득표를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 타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마지막 예우인 셈이다.

여기에 박용택은 인기 구단인 LG 소속이다. 소위 KBO 리그의 '엘롯기' 중 한 팀이다. 롯데는 정규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2위 두산보다 많은 2명의 수상자를 냈다. 손아섭과 1루수 이대호다. 사실 삼성으로 이적한 포수 강민호가 올해 롯데에서 뛴 점을 감안하면 3명이다.

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BO 2017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에 선정된 롯데자이언츠 이대호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손아섭, 강민호야 월등했고, 이대호가 살짝 윌린 로사리오(한호)와 경합했지만 수상한 것은 롯데라는 전국구 인기를 업은 점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대호도 이날 수상 소감에서 "사실 받을 줄 몰랐다"고 말한 이유다.

이대호는 올해 홈런 5위(34개), 타점 6위(111개)에, 로사리오는 홈런(37개)-장타율(6할6푼1리) 2위, 타점 6위(111개) 등에 올랐다. 득표는 이대호가 154표, 로사리오가 118표였다. 물론 로사리오는 외인 선수라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버나디나는 극복해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비인기 구단 선수들은 그만큼 설움을 겪은 것이다. 두 번째 막내 구단인 NC는 박민우에 이어 외야수 나성범도 아쉬운 케이스에 속한다. 나성범은 WAR에서 6.62로 최형우(6.60), 손아섭(5.90)보다 앞선 전체 3위였다. 두산 외야수 듀오도 마찬가지다.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던 2017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일단 수상하려면 팀 우승을 일궈내는 게 첫 번째다. 팀 성적이 좋으려면 자연스럽게 개인 기록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인기 구단을 넘으려면 엄청난 기록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과연 내년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누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