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협상은 정부 여당의 원안에 한국당이 강하게 반대하고, 국민의당이 중간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면적으로는 한국당과 국민의당이 합심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국민의당조차 한국당과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4일 기자 간담회에서 "아동수당이나 기초연금 등 쟁점과 관련해 한국당과 궤를 같이 하느냐며 부정적으로 보고 계신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절대 그런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우리를) 한국당과 같이 짜고 뭔가 몰염치한 정당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거들었다. 자신들을 '합리적 대안세력'으로 부각시키면서, 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 정당으로 규정한 셈이다.
이번 협상은 민주당이 국민의당과만 연대하더라도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구조였다. 두당 만의 합의로 수정된 예산안일지라도 국회법에 따라 의원 50인의 동의만 얻으면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었다. 상정 뒤에도 양당의 의석수 총합인 161석이 과반에 충족하기 때문에 한국당으로선 막을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이는 국민의당의 목소리가 한국당보다 커진 배경으로 거론된다. 때문에 한국당으로선 국민의당과 '정부·여당 압박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었다. 2일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따로 만난 뒤 "김 원내대표의 백브리핑(의원총회 후 브리핑)을 보니까 입장이 변하는 것 아니냐, 기조를 바꾸는 게 아니냐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기류와 맞닿아 있다. 자칫 '나홀로 반대'가 될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4일 오전 협상 타결 전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의 요청에 따라 양자회동을 가졌다. 한국당의 강한 반대로 일정 수준의 정부 여당 견제안이 도출됐다는 관측도 있지만, 핵심 쟁점 관련 협상 타결은 국민의당이 내놓은 대안 위주로 이뤄졌다. 한국당이 관철한 건 법인세 인상 문제와 관련해 중소기업 지원을 약속받은 것 정도라는 평가다.
국민의당은 예산정국에서 이처럼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민주당으로부터 호남 KTX 관련 사업 추진 예산 1조3000억원 이상을 약속받았다. 이날 우원식·김동철 양자회동에서는 국민의당 주도로 선거구제 개편 논의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 소외 기류가 분명해지자 정우택 원내대표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양자회동과 관련해 "원래 국민의당은 우리당과 공개적으로 같이 서려고 하지 않았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산안을 논의하는데 선거구제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이해를 잘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협상 타결 이후에도 기자들과 만나 "공무원 증원 수를 9475명으로 한 건 저희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자당(自黨) 의원들에게 '최대한 반대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당내에선 불만 기류가 역력했다. 한 의원은 "정말 협상 과정에서 번번이 밀렸다"며 협상력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야당이 아니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때문에 국민의당에 대한 반감과 함께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위기감이 같이 흘렀다. 한 사무처 관계자는 "국민의당이 내년 예산에서 SOC를 대폭 챙겼다고 유권자들이 국민의당 덕으로 평가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그건 민주당이 호남을 배려한 것으로 해석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른 관계자는 "각 의원실이 요청한 지역 예산 중 99%가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이대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당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대는 본회의 일정을 합의해주지 않는 방식 뿐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당 관계자는 "3당 합의로 열기로 한 것은 4일 본회의"라며 "이후 본회의를 열기 위해선 절차상 다시 합의가 필요하지만, 역풍 우려가 있어 반대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