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소년 4.3수형인→인민군→한국군으로 기구한 삶

제주4·3(1947.3~1954.9)으로 제주도민 3만 여명이 죽고 민간인 2500여명이 군사재판을 받았다. 이들 수형인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감옥에서 죽거나 살아남은 자는 육체적·정신적 후유장애와 함께 억울한 삶을 살아왔다. 현재 신고된 수형 생존자는 33명. 이 가운데 18명이 지난 4월 19일 제주지방법원에 '4·3수형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을 청구했다. CBS 노컷뉴스는 이들 18명의 기구한 삶을 소개한다. 기사는 수형 생존자들의 삶을 이해하기 쉽도록 일부는 1인칭으로, 나머지는 인터뷰 형식을 취했다. 당시 나이는 수형인명부를 따랐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양일화 할아버지 (사진=문준영 기자)

올해 88살인 4·3수형인 생존자 양일화 할아버지의 삶은 극적이다. 중산간 마을 출신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수형인 생활을 했다. 한국전쟁으로 인천형무소 문이 열리고 인민군으로 편입됐다. 지리산에서 포로로 붙잡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한국군으로 징집됐다.

양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같은 기구한 삶을 37장짜리 스케치북으로 묘사했다. 빼곡한 글과 그림은 제주 4.3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참혹했던 역사의 증거다. 그가 그림과 글로 기록하며 떠올렸을 아픔과 억울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겪은 4.3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양일화 할아버지의 스케치북 (사진=문준영 기자)

"4·3 당시 죽은 수형인들이 많습니다. 자식들도 없어 (4.3희생자)신고를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수형인)명부에 있는 이름을 없애야 합니다. 빨리 재심해서 억울함을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출신인 양일화(88) 할아버지는 제주4.3 당시 우익청년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1948년 제주시 서문통(현재 서문로)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머물다 방아공장(방앗간)에 들른 게 화근이었다. 당시 16살 소년이었다.

양씨는 "당시 (중산간에 위치한)금악이 폭도 동네라고 소문이 났는데 방앗간에 처들어온 우익청년들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 금악 출신이라고 말해 수없이 두들겨 맞았다"고 말했다.

이후 양씨는 제주시 관덕정에 위치한 경찰서에 옮겨진 뒤 고문을 당한다. 경찰은 양씨에게 '산 사람과 연락하느냐'며 고문과 취조를 반복했다.

고문은 가혹했다. 발목을 묶어 매달아 장작으로 마구 팼고, 끓는 물에 고춧물을 타 코에 부었다.

양씨는 "유치장 전체가 '살려주소, 살려주소'라는 울음소리 천지였다"며 "정신이 없어 무조건 묻는 말에 '예'라고 답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양씨는 이후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5년형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로 옮겨진다.

추미애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999년 9월 15일 당시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발견한 4.3수형인 명부에 따르면 양일화 할아버지(당시 이름 양송옥)의 군법회의 판결 날짜는 1948년 12월 27일로 기록돼 있다. (사진=4.3수형인 명부, 문준영 기자)

국가기록원의 4.3수형인 명부에 따르면 양씨의 군법회의 판결 날짜는 1948년 12월 27일이다.

양씨는 "형무소에 도착하자마자 큰 강당에 불러 모아 사람들에게 '누구는 몇 년', '누구는 몇 년' 이렇게 징역형을 말해줬다"고 당시 모습을 설명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몇 년 형을 받았는지조차 모르고 형무소까지 갔던 것이다.

수감 생활을 하던 양씨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형무소 문이 열리면서 북한군으로 끌려가 인민군이 됐다. 황해도 개성에서 전라도까지 내려왔다가 지리산에서 제주출신 한국군에게 붙잡힌다.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내다 석방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국군 징집영장이 나와 육군에 입대하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제주 4.3 당시 서귀포시 성산읍 지역 주민 등 190여명이 학살당한 터진목 해안가. 지난 6월 양일화 할아버지가 터진목을 방문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문준영 기자)

양씨는 인터뷰 내내 새 정부의 4.3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양씨는 "박근혜 정부였으면 아마 4.3을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극우단체가 들고 일어나서 4.3희생자들을 모욕하고 훼방했는데 (그들이)패소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지난 2001년부터 2016년까지 극우단체의 4.3희생자 결정 무효와 제주4.3사건 관련 사진 전시금지 등 제주4.3특별법에 대한 무력화 시도가 이어져 왔었다. 7개의 소송 중 4건이 각하됐고 3건이 기각됐다. 이 기간 보수단체의 4.3 폄훼도 계속됐다.

양씨의 죽기 전 소원은 바로 4.3의 완전한 해결과 명예회복이다.

◇ 직접 겪은 4.3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양일화 할아버지

양일화 할아버지는 자신이 겪은 4.3을 37장짜리 스케치북에 담았다. 제목은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 빼곡한 글과 그림은 제주 4.3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참혹했던 역사의 증거다. 양 할아버지의 스케치북을 요약‧정리해 처음 공개한다.

자신이 겪은 4.3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양일화 할아버지의 스케치북.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1948년 소년 양일화의 시각으로 4.3이 묘사돼 있다. 4.3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사람들이 왜 산으로 도망갔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고 표현한다. 산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을 향해 경찰이 총을 쏘고 있다.

1943년 양씨가 제주시 한림읍 금악에 있는 간이 학교에 다니는 장면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은 제주시 한림읍의 모습. 바다에서 일본군과 미군이 충돌하고 있다. 육지에는 일본군의 천막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들이 지역 주민들을 수탈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군이 제주에서 빠져 나가고, 1948년 4.3이 시작되자 경찰이 마을 청년들을 붙잡아 가고 있다.

군경이 제주 지역 곳곳을 불태우고 산에 올라간 사람들을 잡기 위해 총구를 산으로 들이밀고 있다. 산에서 붙잡힌 사람들이 총살당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군경에 잡힌 시민들이 제주시 주정공장과 경찰서에서 배를 타고 형무소로 옮겨진다. 당시 인천형무소의 모습.

6.25전쟁이 발발하자 인천형무소에 있던 소년 양일화가 인민군에 의해 풀려난다.

인민군에 잡혀 북으로 갔다 남한(광주)으로 보내진 양씨.

인천상륙작전이 일어나자 지리산으로 도망갔다 남한군에 붙잡힌 양씨. 이후 포로수용소에 갇혀 생활한다.

경북 상주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 거제도 수용소로 옮겨졌다.

수용소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소년 양일화.

수용소에서 농악대 활동을 하고 축구 등 운동을 하고 있는 수용자들.

양씨가 수용소 생활을 마무리하고 기차를 이용해 항구로 향하고 있다. 이어서 제주로 돌아오는 배를 타고 있다.

제주에 도착해 가족들에게 절을 하고 있다. 인사를 마친 뒤 포로수용소 석방 신고를 하기 위해 제주경찰서로 향하고 있다.

포로수용소 석방 신고를 하기 위해 제주경찰서로 향하고 있는 양씨

동네 지서 소장에게 신고하러 가는 모습. 이후 군대에 입대한 뒤 52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다.

군 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당시 향교 촌장 모습.

노컷뉴스

16살 소년 4.3수형인→인민군→한국군으로 기구한 삶

[제주4·3수형인]⑭양일화 "내가 겪은 4·3기억 스케치북에 담아 보관"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