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된 벤처 3인방 해외사업 우려에 공정위 "삼성을 봐라" 일축

공정위 "총수 없으면 오히려 차질" vs "산업화 시대 잣대, 벤처엔 적용 안돼"

'벤처 신화'를 쓴 1세대 3인방이 나란히 '총수 지위'에 올랐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창업자 세 사람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일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을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네이버 이해진 전 의장, 카카오 김범수 의장, NXC(넥슨) 김정주 대표를 각 기업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동일인이란 기업 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나 자연인을 뜻한다.

총수 유무에 앞서 국내 자산 총액이 5조 원을 넘으면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된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자산 총액이 5조 원 이 넘어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네이버와 넥슨은 이번에 준대기업집단 반열에 올랐다.

총수가 있고 없고에 따라 기업의 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확연히 달라진다. 당연히 총수가 있는 기업은 견뎌야 할 왕관의 무게가 무겁다. 총수 있는 기업은 총수 자신과 친인척이 회사와 거래한 것을 모두 공시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 등 사회적 책무가 상당하다.

정부는 '벤처 1세대' 성공 신화로 꼽히는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을 나란히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하면서, 세 곳 창업자 3인방도 '총수 지위'에 올렸다. 정부는 이들 기업의 규모가 커진 만큼 총수 '있는' 기업으로 지정해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지정을 두고 업계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기존 재벌처럼 창업자 혹은 가족경영체제에서 벗어나 이사회나 전문인경영체제로 발전해온 벤처 기업에도 똑같이 30년 전 산업화 시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이들 기업의 혁신을 저해하고 글로벌 기업에 역차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네이버, 총수 없는 기업 요청한 이유?…총수 있고, 없고의 차이?

국내 '총수 없는 기업'에는 포스코·농협·KT·대우조선해양·S-OIL, KT&G, 대우건설이 있다. 7곳 모두 동일인이 '법인'이다.

대부분 민영화된 공기업들로, 원래 총수가 없거나 기업 임원 지배력이 매우 적다. 이에 따라 '총수 있는 기업'과 달리 동일인 본인과 육촌 이내 친인척이 회사와 거래한 것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전 의장이 이번 공시기업 집단지정 발표를 앞두고 공정위에 직접 찾아가 '총수 없는 기업' 지정을 요청한 것이 바로, 이 개념을 네이버에도 적용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정위는 네이버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업에 실질적인 영향력 행사 여부'가 동일인(총수) 지정 기준의 '핵심'이라고 밝혔던 김 위원장은 자산총액 6조 6000억 원에 이르는 네이버 '총수'로 이 전 의장을 지정했다.

이 전 의장이 대주주 중 유일하게 경영 활동에 참여하고, 임원 인사나 주요 의사 결정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총수 지정에 있어서 네이버만 예외로 둘 수는 없다는 의지다.

총수 '있는' 기업은 동일인 자신, 육촌 이내 친인척이 회사와 거래한 내역을 전부 공시해야 한다.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도 받게 된다. 규정을 위반하면 과징금 등의 처벌을 받는다. 이 때문에 총수 본인이 지는 부담이 상당히 크다.


실제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의 총수 지정과 함께 그가 지분 100% 보유한 개인회사(지음, 경영컨설팅)와 사촌(화음. 음식점)·육촌(영풍항공여행사) 소유의 회사 등 3개사를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규제 대상 회사로 지목했다.

그러나 사촌과 육촌의 회사는 이 전 의장의 지분도 없고 네이버와의 거래도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 전 의장의 경영 컨설팅회사 지음 역시 네이버와의 거래 없이 별도로 설립한 회사일 뿐, 세 곳 모두 공정위가 내부거래 등 사익편취 대상으로 지목할 만한 규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네이버의 주장은 공정위는 설득되지 않았던 모양새다.

현재 네이버 최대 주주도 국민연금공단(350만 주, 10.61%)이다. 이어 외국계 자산운용사 에버딘(166만 주, 5.04%)과 블랙록(166만 주, 5.03%) 순이다. 지난달 14일 공정위 방문 당시만 해도 4.64%였던, 이 전 의장의 지분은 그로부터 약 열흘 뒤 0.33%(11만 주)를 매각, 4.31%로 줄어들었다.

이 전 의장의 지분은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는 동일인 주식 소유 기준인 '의결 가능 주식 총수 30%'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네이버는 또 계열사 대부분 모기업 네이버가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재벌들이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금융계열사나 공익법인은 아예 없다. 이 전 의장이 라인의 스톡옵션(557만여 주)을 갖고 있긴 해도, 이 역시 네이버에 대한 지배력 강화와는 관계가 없다. 오너나 그의 가족이 출자한 계열사가 없다 보니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불거진 적도 없다.

그러나 공정위는 '실질적 지배력'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실제 네이버 이사회 7명 중 1% 이상 의결권을 가진 유일한 등기이사이자, 이사 선임 과정에서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다"며 이 전 의장의 동일인 지정을 못 박았다.

이 전 의장의 '4.31%'에 불과한 낮은 지분에 대해서도 "이 전 의장의 지분과 임원(0.18%)이 보유한 지분을 합하면 총 4.49%로, 경영 참여 목적이 없다고 공시한 국민연금과 해외기관투자자(20.83%)를 제외할 경우 최다 출자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 공정위 "삼성 총수 있어도 해외 활동 지장 없다"…"산업화 잣대 벤처 적용 안 돼"

이 전 의장이 '총수 없는 기업' 지정에 간절했던 이유는, 그가 '총수' 반열에 오르면 네이버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글로벌 사업 확장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네이버는 아시아에 이어 유럽으로 사업 반경을 넓히면서 구글과 페이스북 등과 경쟁 중이다. 그러나 이번 공정위의 총수 지정으로 네이버의 경영 행보에 제약이 따르게 됐다는 평가다.

네이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불·편법 경영 승계 논란 등으로 한국 재벌이나 총수 등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서 "이 전 의장이 현재 유럽 시장 진출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재벌' 딱지가 붙으며 특정 개인이 지배하는 기업처럼 규정되면 향후 글로벌 진출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국내 인터넷 기업의 해외 사업 차질 우려에 삼성과 현대를 비교하며
논란을 일축했다.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브리핑에서 박재규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재벌 총수 지정이 기업 해외 경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에 "삼성이나 현대차는 총수가 있는데도 해외 활동에 지장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박 국장은 "(총수 지정이 기업)이미지에 타격이 온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삼성, 현대도 투자 활동이 잘 안 되고 이미지도 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동일인이 없어진다면 해외 바이어나 해외 계약 때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네이버 측에서 주장하는 것은 정확한 어떤 근거나 이런 것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공정위가 30년 전 산업화 시대에 제조사나 건설 기업 등을 규제·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잣대를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벤처 출신 기업들에도 똑같이 들이대자 "ICT 기업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업종의 특성을 무시한 채 꺼내 든 서슬 퍼런 규제 칼날에 정작 국내 인터넷 기업은 제대로 사업 추진도 못 하면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업체에 점유율을 빼앗기고 격차는 더 벌어지는 '역차별' 우려도 나오고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성장하면서 실제 자회사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이는 업무 차별성에 따른 분사된 스타트업 형태로, 기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 기업이 분사한 것은 신속한 의사 결정과 빠른 실행력 등을 위한 것인 데다, 지배 구조가 창업자 등의 우호지분을 확장하기 위한 일반 재벌과는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벤처 출신 기업을 낡은 잣대로 옥죄면서 활발한 기업 경영을 막고 과거 재벌구조와는 다른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힘쓰려는 노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산업화 과정에서는 재벌들이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다른 기업이 성장할 생태계를 파괴하고, 총수 일가들이 회사 자산을 부당하게 편취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네이버나 카카오를 산업화 시대와 똑같은 재벌 규제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카카오는 자산총액이 지난해 5조 1000억 원에서 올해 6조 8000억 원으로 늘었고 계열 회사는 지난해 45개에서 올해 63개로 늘었다. 자사 총액이 5조 5000억 원인 넥슨도 준대기업집단으로 신규지정됐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 김정주 대표도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카카오 관계자는 "법에 규정된 준대기업집단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넥슨 역시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으로 발생하는 공시와 신고의무 등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한편, 지금까지 순수 민간기업이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현재 총수 없는 기업에 해당하는 곳들은 공기업 태생이거나 해외주주, 정부 채권단 등이 대주주인 경우로 순수 민간기업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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