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해야 하나?"…고민에 빠진 양계농가

전문가 "살충제 성분 검출량에 따라 판단해야…"

'살충제 계란'에 대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전수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16일 경기도 양주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살충제 계란' 파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살충제 계란을 낳은 닭들을 살처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농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살처분을 하자니 지원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자니 하루하루 폐기되는 수만 개의 계란만큼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6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닭을 살처분 할 경우 법정 가축전염병에 해당하는 AI(고병원성 인플루엔자)와는 달리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닭의 체내에 흡수된 살충제 성분은 시간이 지나면 배설물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계란의 정상 출하가 가능해져 살처분 할 이유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지원해 줄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닭 살처분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고, 고려하고 있지도 않다"며 "농장 자체적으로 살처분 한다 해도 국가 차원에서 보상을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계 농장의 입장에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죽을맛'이다. 매일 생산되는 계란이 폐기되는 숫자만큼 손실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장주들은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제대로된 예방 교육이나 관리조차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살충제 계란이 발생한 한 농장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우리도) 피해자다. 문제가 될 거란 걸 알고서 이런 살충제를 사용했겠냐"며 "농약은 쓰지 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떤 성분이 들어가면 안되고 이런 건 알려준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농장은 계란의 하루 생산량이 2만여 개로, 하루 손실액만 200만원(시가 개당 200원으로 계산)에 달한다. 한 달만 출하가 금지되면 1억이 넘는 손실을 입게 된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은 앞으로 2주에 한번씩 2번 이상, 즉 4주 동안 검사해 이상이 없어야 출하 금지 조처가 해제된다. 출하 금지 조처가 해제되더라도 6개월 동안은 지속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 전문가 "살충제 성분 검출량에 따라 판단해야…"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양에 따라 살처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닭의 체내에 살충제 성분이 많이 축적됐을 경우 배출 기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호서대 정상희 임상병리학과 교수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계란에서 검출된 살충제 양을 통해 닭 체내에 남은 양을 역산하고, 그 양이 빠지는 시간을 산출한 뒤 그동안에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하면 닭을 처분할 것인지, 계란을 처분할 것인지가 나올 것"이라며 "현재 국내에서 보고되고 있는 정도의 양이면 일주일 정도면 빠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 15일 경기 남양주시 마리농장과 경기 광주시 우리농장에서는 각각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라는 살충제 성분이 0.0363㎎/㎏(기준치 0.02㎎/㎏), 0.0157㎎/㎏(기준치 0.01㎎/㎏) 검출됐다.

16일 검출이 확인된 전남 나주시 정화농장은 비펜트린이 기준치의 21배에 달하는 0.21㎎/㎏이 검출됐다. 이 농장 경우 닭의 체내에 축적된 살충제 성분을 모두 제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비펜트린은 피프로닐에 비해 체외 배출 속도가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우리보다 먼저 살충제 파동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는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수십만 마리의 산란계(알을 낳는 닭)들이 살처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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