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후보자의 경우 두 딸이 2백여 만원의 증여세를 석 달 뒤에 납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과거 정부의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어떤 사례로 낙마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것은 16대 국회가 2000년 6월에 인사청문법을 제정하면서부터다.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수많은 고위공직 후보들이 낙마했다. 일부는 인사청문 대상이 아니었지만 언론의 검증이 강화되면서 자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특징적인 것은 한 가지 사유로만 낙마한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두가지 이상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여론이 악화되면서 물러났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장상, 장대환 두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인사청문회 직후 낙마하면서 당시 정부여당을 망연자실케 했다.
◇ 참여정부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는 하자 없었지만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
참여정부에서는 윤성식 감사원장과 이기준.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의 경우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코드 편중 인사라고 비판하고 여당이던 민주당이 분당하면서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다.
전효숙 헌번재판소장 후보자도 자진 사퇴함으로써 청문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역시 능력이나 자질 등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상의 하자로 인해 쓴잔을 마셔야 했다.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한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부터다. 2006년부터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됐지만 이명박 정부부터 언론과 정치권의 검증 경쟁이 불붙으면서 다수의 낙마자가 나왔다.
◇ MB정부 초기에 부동산 투기 문제로 장관 후보자 3명 줄낙마
이명박 정부 초기는 그야말로 인사참사였다. 남주홍 통일, 박은경 환경,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전후해 낙마했다. 세 사람 모두 부동산 투기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청문회를 통과하기 힘든 인선이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정부부처 차관도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제자 논문 표절, 영종도 농지 투기 및 거짓 해명이 문제가 돼 물러나야 했고,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은 쌀 직불금 부당수령으로 물러났다.
천성관 검찰청장 후보자는 스폰서 의혹 등으로 물러났고 한때 MB계 대선 후보로 거론됐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재산 축소신고, 반값 전세 등 여러 의혹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박연차 태광 실업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실을 사진으로 드러나면서 사퇴해야 했다.
이 밖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5차례의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등으로 물러났고,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쪽방촌 투기 문제로 장관의 꿈을 접어야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대검차장 퇴임 후 7개월 동안 7억원의 수입을 올린 사실이 국민 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 박근혜정부 초기도 인사참사 재연…국정운영 동력에 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인사참사는 이어졌다. 특히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필두로 김용준 총리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새정부 출범을 전후해 명멸하면서 정권 출범 초기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상실됐다.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는 공직자 주식백지 신탁 제도에 따라 소유 주식을 포기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물러났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홍원 총리가 물러났지만 후임 총리 임명 과정에서 안대희, 문창극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대법관을 지낸 안대희 후보자는 5개월의 변호사 활동 기간에 15억원을 번 사실 때문에, 문 후보자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 영상이 논란이 된 끝에 물러났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 표절 의혹과 연구비 부당 유동, 연구 성과 부풀리기가 문제가 됐다.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음주운동 등 법규 위반으로 문제가 된 터에 인사청문회 중에 폭탄주를 마신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돼 물러났다.
국민의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물러난 26명의 공직 후보자 가운데 단일한 사건으로 물러난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쌀직불금 문제로 물러난 이봉화 전 복지부 차관과 강연 발언이 문제가 됐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 정도다. 특히 위장전입 문제만으로 물러난 경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