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만 있어주렴" 애타는 장기실종자 부모들

"컨트롤타워 없고 장기수사 환경 제약" 제도적 한계

세계 실종아동의 날인 25일,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그리운 엄마·아빠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가정까지 파탄나기 일쑤지만 부모들은 제도적 한계 등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 "내 아이 아프더라도 누군가 곁에만 있었으면…"

지난 1997년 의정부시 의정부3동에서 실종된 김하늘 군을 찾는 수배전단. '얼굴변환프로그램'으로 20년이 지난 후의 김 군을 추정했다. (사진=전국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제공)
정혜경(56) 씨는 다리가 저려올 때마다 2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다리가 불편한 정 씨는 그날도 약을 먹고 잠들었다가 그만 아들 김하늘(당시 4세) 군을 잃어 버렸다.

정 씨는 실종 이후 일마저 관둔 남편과 함께 3년 동안 전국에 있는 고아원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는 사이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정 씨는 지금도 돈만 있으면 전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이가 입대할 나이가 되자 정 씨는 군에서 보관한 혈액을 하늘이 유전자(DNA)와 대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온 것은 "군 입대 시 신체검사에서 뽑는 피는 DNA 저장용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상 힘들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정 씨는 "하늘이가 아프더라도 누군가의 손길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면 원이 없다. 그냥 살아만 있어주면 더 바랄게 없다"고 말했다.

실종된 윤지현(당시 9세) 양을 찾는 수배전단. 윤 양은 지난 1999년 경기도 오산 서동 오산아파트 입구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의 차에서 내린 이후 실종됐다. (사진=윤지현 양 아버지 제공)
4월 봄소풍을 떠난 윤지현(당시 9세) 양은 18년째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 윤봉현(56) 씨는 딸을 잃어버린 이후 없던 종교까지 갖게 됐다. 기도에도 응답이 없자 점집을 가고 굿도 해봤다고 한다.

딸이 떠나자 가정은 파탄 났다. 윤 씨는 아이을 잃은 책임을 따지다 아내와 별거하기에 이르렀고, 이내 불면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윤 씨는 지현이가 혹시라도 해외로 입양됐을 것에 대비해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합심해 해외입양자 DNA채취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몇 년 못가 중단됐다.

윤 씨는 "아빠가 당시 어떤 사연으로 지현이가 그렇게 실종 됐는지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고 찾을 길도 없어 참 힘들게 살고 있다"면서 "지현아 빨리 좀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 컨트롤타워 부재, 경찰 잦은 인사…아이 찾기 힘들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윤지현(당시 9세) 양의 모습. 아버지 윤봉현 씨는 지현이의 모습을 하나하나 앨범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윤지현 양 아버지 제공)
많은 아동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실종 당시 상황과 제도적 한계가 꼽힌다.

경찰은 지난 2012년부터 지문 등 사전등록제도를 시행해 276명의 아동을 조기 발견했다. 또, 유전자 분석사업을 통해 장기실종자 수백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10년 이상 된 장기실종아동은 358명에 달한다. 현재까지 실종된 아동 수가 551명인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상당 수가 장기실종으로 분류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장기실종아동들은 길거리에 폐쇄회로(CC)TV가 많지 않았던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에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목격자의 불분명한 기억에만 의존해 진술이 사실과 달라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장기실종자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경찰청 '182 실종아동찾기센터'는 신고가 들어와도 관할 경찰서로 사건을 배당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실종전담팀이 있는 곳도 전체 17개 지방청 중 경상북도지방청 1곳에 불과하다.

장기실종 수사를 맡은 일선 경찰들의 잦은 인사이동도 문제다. 장기실종자는 긴 시간을 두고 추적해야하는데 매년 보직을 바꾸는 경찰 인사가 장기수사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장기실종 수사의 경우 경찰 개인의 노하우가 매우 중요하다"며 "인사이동이 잦으면 노하우가 수사진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전했다.

장기실종사건에만 집중할 수 없는 업무환경도 방해요소다. 일선 경찰서의 경우 실종 사건은 여성·청소년과에서 담당하는데 이곳에서는 실종 사건 외에도 성폭행과 가정폭력 등 실시간 발생 업무도 같이 처리해야 한다. 바로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장기실종사건은 수사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는 처지다.

실종아동의 신상정보가 담겨있는 명단.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찰핵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장기실종은 끝까지 추적수사를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단기간 실적에 신경 쓰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하고, 지휘관은 해당 부서를 배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웅혁 교수도 "장기실종 사건이 강력사건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도록 제도를 구축해야한다"며 "동시에 경찰이 '내 아이를 찾는다'라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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