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교보빌딩 옆 인도에서는 100여 명의 청소년들이 모인 가운데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집회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를 열었다.
한켠에 설치된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청소년 모의투표소'에서는 줄지어 선 청소년들이 신분 확인 뒤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를 하고 투표함에 넣는 과정을 치르고 있었다. 투표소 안내문에는 '만 19세 이하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이면 누구나 가능. 청소년증, 학생증, 도서대출증 등 본인 확인 신분증을 지참하면 투표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무대에서 연설에 나선 한 청소년은 "여기에서 발언한 것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운을 뗐다.
"두발 규제 등 학생다움은 우리가 아닌 어른들이 정한 것이다. 교칙 개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학교에서는 '두발 규제를 풀면 불량한 학생들이 모이고 그러면 집값이 떨어져서 학부모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든다. 청소년들을 두고 어른들은 '미래의 주역'이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의 주인이고 학교의 주인이다."
또 다른 청소년은 "촛불집회로 박근혜를 끌어내린 주역에는 청소년도 포함된다. 청소년이 미성숙해 투표권을 주지 못한다는데, 최순실 등 국정농단을 벌인 일부 어른들보다 청소년들이 더 났다"며 "어른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청소년들도 시민이다. 우리의 당당한 권리를 요구한다"고 꼬집었다.
집회장에는 청소년들이 포스트잇에 의견을 적어 붙이는 '청소년이 말한다. 이런 공약 왜 없냐?'라는 이름의 공간도 마련됐다. '실효성 있는 청소년 참여기구' '청소년 정당 가입·교내 차별금지법' '야자 폐지!!' '성소수자 배제 없는 성평등 교육' '청소년에게 더 나은 노동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청소년을 학생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공약' 등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 "스스로 만든 악법, 스스로 철회시켜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동양시멘트 노조 이재형 지부장은 "지난달 14일부터 고공농성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에게 계속 알리기 위해 매일 아침 8시 집회와 저녁 7시 문화제를 이어왔다"고 전했다.
이 지부장은 "오늘이 대선 투표일인데, 농성기간 이곳을 찾아온 것은 정의당뿐이었을 만큼 외면당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은 저희가 피켓 하나 드는 것조차 제지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어제(8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유세 때도, 이 일대에 우리의 집회·행진 신고가 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막아선 탓에 세종문화회관을 넘지 못했다. 노동자 1명당 경찰 5명 이상이 에워싸면서 탄압했다. 문 후보 유세 현장에 진입한 것은 일부 인원이었는데, 그들마저 조끼를 모두 벗고 작은 피켓 하나씩만 손에 쥔 상태였다. 이날 아침 더불어민주당에 갔을 때도 문 후보는 우리 앞을 지나면서 말 한마디 없이 외면했다."
고공단식농성투쟁지원대책회의는 10일 농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상으로 내려와 앞으로 함께 새로운 투쟁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재형 지부장은 "이제 정권을 잡을 이들이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비정규직 법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 악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있다"며 "정권을 잡고 올라갈 그 자리도 국민들이 촛불로 만들어낸 자리인 만큼, 이러한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스로 만든 악법은 스스로 철회시켜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저희를 비롯한 제2의 촛불이 그 정권을 겨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변해야만 한다"
현장에서 만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19대 대선 투표일을 맞아, 선거 과정과 투표 당일 장애인들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한 참정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알리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며 말을 이었다.
"장애인들의 삶의 요구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평등하게 투표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제가 서울 삼청동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그곳 주민센터 자체가 평상시에도 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놨는데, 더욱이 투표소를 2층에 설치해서 '투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2시간 40분 동안 선관위에 요구해야만 했고, 들어 올려져서 투표하는 경험을 했다. 선관위에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만나 주지도 않고 오히려 '이 정도 해줬으면 된 것 아니냐'는 태도였다."
그는 "장애인을 비롯한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변해야 한다. 우리네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선거 때만 외쳐대는 공허한 구호, 당위적인 이야기를 재탕 삼탕하는 태도부터 변해야 한다"고 차기 정권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겨우내 촛불을 든 시민들이 가득 메웠던 광장에는 이제 방송사들의 거대한 무대가 들어섰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광장에서 밀려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박 대표는 "씁쓸함을 넘어 '이럴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예를 들어 대선후보 TV 토론 당시 방송사에서 수화통역사를 한 명만 둬 청각장애인들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후보자들의 말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수화통역사를 3명 이상 배치해야 한다고 요청했더니, 재정 문제와 비장애인들의 인식 문제를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지금 저기(광화문광장)에 어마어마한 장비를 갖다 두는 태도를 보니 이중적이다 못해 야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사회 흐름과 전혀 관계 없다는 듯이 대하면서, 약간의 동정 어린 눈길만으로 접근하는 것이 커다란 문제다."